믿고보는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조합은 또 통한 듯 보인다. 이들은 슬쩍 보면 아수라장 오합지졸처럼 느껴지는 새 예능 프로그램에 현 시대의 유행을 담았고, 고민을 담았고, 또 그로 인한 웃음과 가치를 창출해냈다. 유튜브·브이로그 등 TV를 위협하는 온라인 콘텐츠의 막강한 영향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접목한 모양새도 친근하면서 실험적이다.
전작 '무한도전'을 통해서도 사실상 한 콘셉트와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적인 예능과 달리, 예능이라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 최대한 많은 것을 담아내려 했던 김태호 PD와 유재석이다. 그럼에도 10년 장수 예능의 한계점은 있었고, 결국 휴식기를 택했다. 다시 돌아온 이들은 아예 울타리라는 것을 없애 버렸다. 유재석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고정 멤버도 없다. '고인물'이 아닌 새 스타 탄생에 대한 가능성을 화끈하게 열어뒀다.
27일 첫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에서는 김태호PD로부터 두 대의 카메라를 받은 유재석의 모습에서 시작됐다. 일단 카메라를 받으면, 그 다음은 손에 쥔 사람 마음대로 하면 된다. 곧바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줘도 되고, 그대로 품은 채 며칠이고 자신의 모든 일상을 담아도 된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릴레이 카메라' 형식은 누가 등장할지도, 또 어떤 콘텐츠가 만들어질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능력있고 매력있는 누군가가 어떻게 튈지도 알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유재석의 고민이 살짝 드러나기도 했다. 유재석의 고민은 곧 '놀면 뭐하니'의 정체성과도 일맥상통해 보였다. '예능 세대교체'를 희망하고 있는 유재석은 특정 콘셉트가 아닌, 프로그램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닌, 온전한 그 사람을 자체를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지길 바랐다.
모든 프로그램과 상성이 잘 맞는 예능인은 사실상 많지 않다. 여기에서 수혜를 입었다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경우도 허다하다. 뜨고 지는 것이 순식간이라는 뜻이다. 수 많은 예능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프로그램이 성공하고 인기를 얻는 것 역시 하늘의 별따기다. 사람이고, 프로그램이고 한번 주목받기가 어렵지 튄다 싶으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다만 뽑아먹을 때까지 뽑아먹고 굴린다.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고인물'이 되기 십상이다.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신선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현 시대에, 새로움을 가장 많이 고민하지만, '지겹다' '지루하다' '또 나오냐' '질린다' '그만해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것도 바로 방송가다.
유재석은 "하나 아쉬운게 그거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보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계속 이어질 수 있으려면 결국 또 새로운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데 새로운 인물들이 나올 프로그램이 없다"며 "'해피투게더'를 하면 '이 친구 너무 재미있네?' 생각해도 또 부를데가 없다. 막상 새로운 버라이어티 예능을 하고 싶어하는 제작진이 있어도, 막상 새로운 사람이 없다. 분명히 있을텐데"라고 말했다.
이어 "예능 프로그램이 하루 몇 십개씩 방송을 한다. 근데 포털 메인에 걸리냐 안 걸리느냐에 따라 조회수 차이가 크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고 알리려면 웬만큼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며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하고 사라지는게 너무 많다. 예능을 잘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사람이 많아야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유희열에 따르면 유재석은 JTBC '슈가맨' 녹화를 진행 하면서도 매주 이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유재석의 고민을 '유재석 광팬' 김태호 PD가 몰랐을리 없다. 또한 이는 '무한도전'이라는 대표작 한 편이 필모그래피의 전부인 김태호 PD의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고민을 능력으로 풀어낸 능력자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놀면 뭐하니'의 '릴레이 카메라'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판을 깔아줬을 때 그 위에서 노는 것은 각자의 마음이다. 판을 깔아준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디에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고민을 슬쩍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놀면 뭐하니'는 콘셉트가 있는 듯 없다. '이 예능은 이런 것만 해야해. 이런 사람만 출연할 수 있어'라는 어떤 경계선과 한계점도 굳이 정해놓지 않았다.
물론 '놀면 뭐하니' 첫 방송은 '무한도전'의 연장선상으로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유재석은 하하와 유희열에게 카메라를 넘겼고, 하하가 받은 카메라는 양세형에 이어 유세윤에게, 유희열이 받은 카메라는 정승환·정재형을 거쳐 장윤주에게 향했다. '무한도전' 특집을 통해 한번씩은 봤던 멤버들이다. 그러나 이 짧은 이동에도 개개인의 성향은 천차만별로 달랐다. 때론 재미없고, 때론 통편집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놀면 뭐하니'는 분명 다른 예능에서는 담을 수 없는 그림을 담아낼 것으로 예측된다. 오랜 고민 끝 돌아온 그 첫 시작점에 응원의 목소리를 먼저 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