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의 유명 야구 칼럼니스트 피터 개몬스는 류현진(LA 다저스)의 '기능적 운동신경(functional athleticism)' 또는 '실용적 운동신경' 을 거론한 적이 있다. 류현진의 기능적 운동신경이 메이저리그의 어느 투수보다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남들보다 운동에 소질이 있고, 무엇이든 금방 배우는 사람에게 흔히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능적 운동신경'이란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우 생소하다.
NBA(미국 프로농구)에서는 매년 드래프트에 앞서 '컴바인(combine)'이 열린다. 컴바인은 구단이 드래프트 참가자의 파워와 스피드, 체력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일종의 운동 능력 테스트다. 컴바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드래프트 지명 순위가 예상보다 올라가기도 한다. 버티컬 점프(제자리높이뛰기)와 민첩성 등 농구에 적합한 운동 능력을 갖췄다는 것은 그만큼 프로에서의 성공률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 열린 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영광은 자이언 윌리엄슨(뉴올리언스)에게 돌아갔다. 그의 운동 능력이 드래프트 동기생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월했다.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도 고등학생 신분으로 참가한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학생 형들을 모두 제치고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제임스는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신인 시절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운동 능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기능적 운동신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다. 하미두 디알로(오클라호마시티)는 NBA 컴바인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버티컬 점프(44.5인치·1.13m)를 기록했다. 2018년 컴바인의 모든 항목에서 1위를 자지한 이른바 운동 능력 종결자였다. 지난 2월에 열린 NBA 올스타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가공할만한 점프력을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는 컴바인 때 보여준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되기 전까지 평균 3.7득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코트 위에서의 활약은 매우 미미했다. 게다가 컴바인 민첩성 테스트 1위 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수비 시 상대 선수를 너무 쉽게 놓쳐 팬들의 원성까지 들어야만 했다. 디알로의 운동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기능적 운동신경'은 그만큼 따라와 주지 못한 것이다.
류현진과 김광현을 비교하면 '기능적 운동신경'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야구에서도 NBA처럼 컴바인이 있다면 분명 김광현은 점프와 스프린트, 민첩성 등 모든 항목에서 류현진을 앞설 것이다. 김광현의 운동능력은 와이드리시버(미식축구의 공격수)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그의 전매특허인 시속 150km대의 강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는 타고난 운동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면, 류현진의 컴바인 성적은 김광현보다 약간 떨어질 것이다. 컴바인 성적만 놓고 본다면 그가 어떻게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투수까지 됐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류현진의 평균 구속은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낮은 90마일(145km/h) 정도다. 하지만 류현진은 투수에게 필요한 '기능적 운동신경'을 타고났다.
선발 투수로 100구 이상을 던져도 흐트러지지 않는 부드러운 투구폼과 뛰어난 제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특히 단번에 새로운 구종을 익히는 '기능적 운동신경'은 천재에 가깝다. 신인 시절 팀 선배인 구대성으로부터 처음 체인지업을 접한 후 한 달 뒤부터는 실전에서 주 무기로 던지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는 댈러스 카이클(애틀랜타)의 영상을 보면서 커터를 순식간에 익히기도 했다. 많은 투수가 새로운 구종을 익히는데 최소 1년이 걸리거나 몇 년간 연마해도 실전에서 결정구로 쓸 정도로 수준급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기능적 운동신경'이 뛰어난 류현진에게는 매우 쉽고 간단한 일이다.
김광현의 '기능적 운동신경'은 류현진보다 다소 떨어진다. 직구와 슬라이더 외에 새로운 구종을 쉽게 장착하지 못하는 이유일 수 있다. 올 시즌 스플리터와 커브 구사 비율을 늘렸지만 KBO 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김광현에게는 뛰어난 운동 능력이라는 강한 무기가 있다. 이것이 많은 전문가가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성공을 예상하는 이유다.
류현진은 타고난 '기능적 운동신경'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부진에 빠졌지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경쟁을 펼칠 정도다. 류현진과 다른 김광현, 타고난 운동 능력으로 메이저리그를 정복할 수 있을까. 그의 도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