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는 호평 속 종영한 JTBC '멜로가 체질'에서 장르를 불문한 '열연이 체질' 임을 또 한번 입증했다. 드라마에 처음 도전한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과 함께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도 만점'의 창작물을 완성시켰다. '멜로가 체질'은 이 감독 특유의 쫄깃쫄깃한 말 맛에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능청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 중심에 선 천우희는 전여빈·한지은 등 신인 배우들과 함께 하며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누구 하나 빛을 보지 못한 캐릭터 없이 인물 모두가 반짝거리도록 끌어주고 받쳐준 천우희의 내공. 인생작과 인생캐가 동시에 탄생했다.
'멜로가 체질' 종영 후 천우희는 쉬지 않고 부산으로 달려갔다. 지난 3일 개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BIFF)에 신작 '버티고'가 '한국 영화의 오늘' 섹션에 공식 초청되면서 주연배우 천우희도 배우 유태오·정재광·전계수 감독과 함께 화려한 축제에 참여했다. 17일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된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 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 '멜로가 체질' 진주의 옷을 벗고 재빨리 '버티고' 서영으로 변신한 그는 "부국제는 천우희라는 배우의 시작과 같다"며 영화제를 찾은 수 많은 관객들과 소통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빡빡한 부산 일정의 끝에서 천우희를 만났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바다 냄새 가득한 술자리에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예계 3대 주당' 소문부터 건강한 멘탈 관리의 비법까지 속속들이 털어놓은 시간. 새벽까지 해운대 포차에서 술잔을 기울였다는 천우희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기분좋은 웃음을 지으며 '천우희의 행복론'을 설파했다.
-'멜로가 체질'은 뜨거운 화제성만큼 시청률도 늘 함께 언급됐죠. "시청률과 상관없이 저에겐 정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보여드린 적 없었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분들이 '누구 하나 미운 캐릭터가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아요. 함께한 사람들이 정말 잘 맞았고, 실제로 좋은 이들이기도 했어요."
-오히려 아쉬움이 컸겠네요. "제가 원래 작품이 끝나고 잘 울지 않거든요. '멜로가 체질' 마지막회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에게 문자가 왔어요. '처음으로 웃으면서 즐겁게 심적인 부담 없이 연기한 것 같아 보기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부모님이 제 작품을 보면 힘들고 어렵고 짠해 보이셨나봐요.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시지만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도 하셨던 것 같아요. '멜로가 체질'에서는 울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싶으신거죠. 복합적인 마음에 그 문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벌써부터 시즌2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어요. "저희도 '시즌2를 하게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어요. 결국 시간이죠. 일단 감독님부터 차기작 영화를 준비하셔야 하니까. 시기를 잘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은 되는데 그것만 맞는다면 하고 싶은 마음은 커요."
-그 많은 대사를 소화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너~무 많았어요. 어마어마했죠. 심지어 초반에는 저 혼자 쉼 없이 계속 쏟아 붓잖아요. 스태프들이 '진주는 너무 말이 많아. 짠해. 이걸 어떻게 다 외워'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어려운 내면 연기는 많이 해봤어도, 대사가 이렇게 많은 역할은 처음 해봤어요.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도 맞아. 근데 또 닥치니까 어떻게든 다 되더라고요.(웃음) '하면 되는구나. 겁내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배우들과 워낙 호흡이 잘 맞아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천우희의 마음을 움직인 대사는 무엇인가요. "지금 딱 생각나는 건 없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대사를 했기 때문이죠.(웃음) 매 회마다 곱씹을 수록 좋은 대사들이 많았어요. 이 대사도 좋고, 저 대사도 좋았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처음엔 일단 외우고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전체를 봐야 했어요. 그러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감독님 말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죠. 통속적인 표현을 하다가도 허를 한 번씩 찌르잖아요. 정리된 대본집을 원하는 분들도 있던데 준비 중인걸로 알아요. 저도 소장할거예요."
-'말 맛을 살려야 한다'는 숙제도 있었겠죠. "쉽지 않은 역할이긴 했어요. 아주 일상적으로 연기를 하자니 캐릭터 안에 판타지가 있었죠. 현실에서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웃음) 감독님 특유의 말투가 있는데, 그 말투를 살리면 진주만의 캐릭터가 없을 것 같고, 그런데도 감독님의 색은 묻혀야 하고.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데에 나름의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너무 붕 떠 있지 않으면서,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은. 중간을 찾아 나가는 시간이었어요."
-이병헌 감독과 호흡은 어땠나요. "저는 어떤 작품을 하든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근데 이병헌 감독님은 말이 별로 없는 거예요. 물론 디렉션을 잘 주긴 했지만 그 외엔 말이 없는 편이었어요. '감독님, 표현도 안 하고 좀 서운하다' 싶었는데, 감독님과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이 '아냐. 달라. 말도 많아지고 표현도 많이 하시는거야'라면서 놀라워 하는 거예요. 평소엔 모니터 앞에만 있다고. 전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바로 연락도 했는데, 이전엔 배우들과 연락도 안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놀랐죠.(웃음) 감독님도 즐거워 하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진주는 우희씨가 맡은 역할 가운데 가장 덜 짠한 캐릭터에요. "그렇죠. 근데 워낙 짠한 역할을 많이 하다보니 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진주가 화자인데 본인의 이야기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요. 작가로서 힘든 부분이 초반에 나오긴 하는데 초반 이후엔 나오지 않아요. 다른 캐릭터보다는 깊이감이 조금은 떨어질 수 있다 보니까.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다 무거워질 순 없으니까요. 드라마 속 드라마에 천이슬이라는 여배우가 나와요. 천이슬 대사 중에 '이 캐릭터가 가벼워 보일까봐'라는 것이 있었어요. 제가 이병헌 감독님한테 한 이야기에요. 천 씨 캐릭터라서 '이거 나야?' 싶기도 했어요. 근데 천이슬 대사 중에 '감독님. 저는 왼쪽 얼굴이 더 잘 나와요'가 있었는데 맹세코 저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어요.(웃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처음엔 캐릭터에 대한 걱정이 많았겠어요. "저는 캐릭터의 호감과 연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의 연민이나 호감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진주는 연민을 느끼긴 어려운 캐릭터였고요.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공감을 느낄 만한 점들은 있지만요. 연민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는 걱정을 내심 했는데, 그 외에 것들이 다 받쳐주다보니 괜찮아지더라고요."
-'멜로가 체질'을 시청자로서 바라볼 때 공감이 됐나요.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아직 어리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어요. '배우로서도 멜로 장르에 끌리지 않은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극중 진주가 전 남자친구와 치고 박고 싸우잖아요. 왜 싸우는지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요. 대화로 푸는 스타일이라 화를 내거나 기싸움은 해본 적 없어요. 감독님에게 '왜 이렇게까지 싸워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인물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편인가요. "그때그때 달라요. 내가 갖지 못하고, 해보지 못한 것들에 끌릴 때도 있고요. 또 어떤 때는 저와 닮은 점이 많아서 끌리고요. 당시의 제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안재홍씨와는 '출중한 여자' 이후 두번째 만났어요. "5년 전에 '출중한 여자'를 함께 했는데,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그때 '한공주'와 '족구왕'이 같이 개봉했을 거예요. '족구왕'을 정말 잘 봐서 반갑게 인사하고 1회차를 딱 찍고 헤어졌어요. 1회차를 찍었는데도 잘 맞는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5년 만에 만나니 좋았어요. '한공주'와 '족구왕' 할 때는 20대였는데, 30대가 돼 만나니까 새롭기도 했어요."
-안재홍씨가 완벽한 남자주인공으로 나왔잖아요. "재홍 오빠가 처음엔 스스로 완벽한 설정에 적응을 잘 못하더라고요. 초반에 '잘 생겨서'라는 대사가 많았는데, 오빠가 자꾸 그 대사를 안 하는 거예요. '왜 안 하냐'고 했더니 '못 하겠어'라면서 울상을 짓더라고요.(웃음) '범수가 이런 역할인데 뭐! 자신감을 가져!'라면서 응원도 했는데, '아냐. 그래도 이건 아니야'라면서 끝까지 안 했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