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는 호평 속 종영한 JTBC '멜로가 체질'에서 장르를 불문한 '열연이 체질' 임을 또 한번 입증했다. 드라마에 처음 도전한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과 함께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도 만점'의 창작물을 완성시켰다. '멜로가 체질'은 이 감독 특유의 쫄깃쫄깃한 말 맛에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능청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 중심에 선 천우희는 전여빈·한지은 등 신인 배우들과 함께 하며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누구 하나 빛을 보지 못한 캐릭터 없이 인물 모두가 반짝거리도록 끌어주고 받쳐준 천우희의 내공. 인생작과 인생캐가 동시에 탄생했다.
'멜로가 체질' 종영 후 천우희는 쉬지 않고 부산으로 달려갔다. 지난 3일 개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BIFF)에 신작 '버티고'가 '한국 영화의 오늘' 섹션에 공식 초청되면서 주연배우 천우희도 배우 유태오·정재광·전계수 감독과 함께 화려한 축제에 참여했다. 17일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된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 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 '멜로가 체질' 진주의 옷을 벗고 재빨리 '버티고' 서영으로 변신한 그는 "부국제는 천우희라는 배우의 시작과 같다"며 영화제를 찾은 수 많은 관객들과 소통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빡빡한 부산 일정의 끝에서 천우희를 만났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바다 냄새 가득한 술자리에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예계 3대 주당' 소문부터 건강한 멘탈 관리의 비법까지 속속들이 털어놓은 시간. 새벽까지 해운대 포차에서 술잔을 기울였다는 천우희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기분좋은 웃음을 지으며 '천우희의 행복론'을 설파했다.
-진주는 서른에 대해 고민하는데, 실제 우희씨의 서른은 어땠나요. "애매한 나이였어요. 진주의 대사 중에 '어리다고 하면 어른이라고 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하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고'라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서른이 됐을 때도 막연하게 조급한 마음이 있었어요. 성숙한 어른이 돼야할 텐데, 16살의 저와 서른의 제가 별반 다를 바 없더라고요. 서른이 사실 그렇게 큰 의미가 아닌데 불구하고 그런 고민을 할 때였어요. 뭔갈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죠. 사실 죽기 전까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반백살이 된다고 해도 '난 아직 젊은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날 어려워할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 가면 이제 후배들이 꽤 많잖아요. "당혹스러워요. 스태프들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이상해요.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안 되겠니'라고 해요. 제가 선배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뭐라고 부족한 것도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해나가는 동료로서 대해요. 어려운 점이 있으면 저도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나도 어렵고,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려워'라고 솔직히 말해요. 그게 더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전여빈씨의 행보를 보면 과거 우희씨가 떠올라요. "여빈이를 보면서 '나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기보다, 그냥 한 배우로서 훌륭해요. 저보다 경력이 적거나 나이가 적다고 해서 '내 전철을 밟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아요. 그 친구가 배우로서 가치관이 뚜렷하기 때문에, 팬으로서도 많이 기대가 돼요. 그냥 이런 생각은 해요. 같이 연기를 해보며 그냥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꿋꿋하게 잘 해나가겠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 상처 받을 일들이 생길 거잖아요. 그런 순간들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희씨는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았나요. "여전히 찾아가고 있죠.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는 게 맞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맞기도 하고요. 다음 작품을 하며 연기로 위안받기도 해요. 이 일을 하면서 상처받을 때가 많아요.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에너지가 고갈될 때도 많아요. 근데, 일이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니까 더 위안받고 힘을 받아요.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저에겐 정말 중요해서, 그 안에서 위로를 받기도 해요."
-인복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운이 좋은 배우에요. 작품을 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다 정말 좋았어요. 주변에 배우 친구들이 많다보니 상처를 받거나 모욕적인 순간을 겪는 경우를 곁에서 봐왔어요. 근데 아직까지 다행히도 그런 경험은 없어요. 덕분에 꿋꿋하게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해요."
-'버티고'와 '멜로가 체질'에서는 극과 극의 가족들이 등장하는데, 실제 우희씨는 가족 안에서 어떤 딸인가요. "말 잘 듣는 딸이죠. 제 일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못하게 하지만, 그 외에 것들은 다 부모님 이야기를 들었어요. 말썽 피운 적도 없어요. 이러다 늦바람이 불어서 '반항할거야!' 하지 않는 이상은 그럴 일이 없네요.(웃음)"
-잔소리를 들은 적은 없나요. "예전에 이런 잔소리를 들은 적은 있어요. 제가 뭘 배우면 끝까지 하지를 못해요. 한달 정도면 질려요. '뭘 하나만 꾸준히 해보라'고 하시는데, 잘 안 돼요. 근데 연기는 안 질려요. 해도해도 재미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배우가 되고 싶었나요. "10대 때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나는 왜 태어났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뭔가 쓰임이 있어서 태어난 것 같은데, 뭘 잘하는지 몰랐어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연기가 재미있었어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죠. 그런데 점차 연기에 대한 애정이 커졌고, '배우가 되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에는 딱히 잘하는 게 없었어요."
-연기를 향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힘든 순간이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동시에 타인의 사랑까지 받는 건 더 어려운 일이죠. 가끔 '난 정말 행복하구나'란 생각을 해요. 운이 좋기도 했고요. 감사할 때가 많아요."
-힘든 티를 잘 안 내는 편인 것 같아요. "성향이 그래요. 나름 멘탈이 건강한 편이죠. 그래서 지금까지 탈 없이 잘 지내온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든 힘든 점이 있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힘든 순간의 연속이잖아요. 그런 힘든 순간들을 조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을 하면 끝도 없어요. '뭐 이 정도 힘든 건 당연한 거지'라는 생각을 해요. 나쁜 일이 생기면 '얼마나 더 좋으려고 그럴까'라고 생각하는 게 편해요. 그래서 잘 지치지 않는 편이에요. 부모님도 잘 계시고, 잘 수 있는 집도 있고, 신체 건강해요. 저는 이미 많이 갖추고 있는데 감사한 일이죠."
-'이것만큼은 하지 않겠다, 이것만큼은 지키겠다'는 것이 있을까요. "위선적인 걸 싫어해요. 가식적이고 거짓된 것! 하하하. 물론 그럴 수밖에 없을 때도 있죠. 사람들 앞에 나를 보여야 하니 내 속내를 애써 감추고 일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아닌 것을 저인 것처럼 하는 것도 싫어요. 그리고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걸 싫어해요. 제가 불쾌하다고 해서 남에게 표현을 하면 안 되죠. 티 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해야죠."
-'멜로가 체질'도 그렇고, 한 작품을 대표하는 얼굴로 부담이 되지 않나요. "제가 농담으로 이병헌 감독님에게 '아이고. 나는 얼굴 마담이나 하는 거지, 뭐' 그런 농담을 한 적 있어요. 장난입니다.(웃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저도 단역부터 해왔으니, 어떤 작품의 얼굴이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책임감도 느껴지고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뿌듯하기도 해요."
-주변에 쓴 소리를 해주는 이들도 있나요. "가족이요. 제일 냉정해요. 가장 쓴 소리를 많이 하죠. 연기적으로도요. 제가 오빠가 정말 친하데요, 어느 순간부터 연기 지적을 안 하더라고요. 왜 그런지 봤더니, '나는 네가 상 받은 후부터 쏙 들어갔어'라고 했어요. 하하하."
-영화제를 떠나면서, 천우희의 추천 영화를 추천받고 싶어요. "1순위는 '미드나잇 인 파리'. 늘 언급하는 작품이에요. 그런 영화를 저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음…. 그리고 갑자기 생각하려니 백지가 됐는데…. 왓챠를 켜볼까요? 하하. '인생은 아름다워'·'시네마천국'·'버드맨'·'위플래시'·'시카리오' 어째 영화가 다 강하네요.(웃음) 아, 그리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도 정말 좋아해요. 취향은 없지만 여운이 느껴지는 영화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