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권은 SK의 가을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가을 정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포스트시즌(PS)마다 임팩트 있는 활약을 보여줬다. 지난해 열린 한국시리즈(KS) 1차전에선 조시 린드블럼(두산)을 상대로 6회 역전 2점 홈런을 날렸다. 기선제압에 성공한 SK는 4승 2패로 8년 만에 KS 우승을 차지했다. 영광의 시간마다 그가 있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팀 내 역할은 매년 축소됐다. 키움과의 플레이오프(PO)를 치르고 있는 그는 "결정적인 순간 대타로 나가겠지만 내가 할 일은 더그아웃에서 잘하는 선수들 (오버하지 않게) 다운시켜주고 처져있는 선수들 응원해주는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실제 PO 1,2차전에서 대타로만 딱 한 번 타석을 소화했다. 대신 한동민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PO 엔트리 승선을 장담할 수 없었다. 세대교체 직격탄을 맞았다. 올 시즌 1군 출전이 18경기(선발 5경기)에 불과했다. 박정권은 "(엔트리 제외는) 각오하고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염경엽 감독은 박정권을 PO 엔트리에 포함했다. 통산 PS 60경기(KS 34경기)를 소화한 '경험'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PS에서 쌓아 올린 데이터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팀의 자산이다. 그는 "감독님이 넣었다는 건 (무엇을 원하는지) 읽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했다.
사실 입지는 지난해부터 줄어들었다. 2018시즌 1군 출전이 14경기(31타석)밖에 되지 않았다. 전년 대비 104경기가 줄었다. 불만이 생길 수 있었다. 나이에 따른 기량 하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베테랑도 꽤 있다. 박정권은 "지난 시즌 1년 내내 2군(강화)에 있으니까 처음엔 미치겠더라. 그런데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밥도 같이 먹고 야구를 하니까 문득 '나는 행복한 야구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기억에 남는 커리어를 쌓은 것도 아니고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도 아니었지만 처절하게 훈련하는 어린 선수들을 보니까 불평, 불만을 얘기할 때가 아니었다. 지난해와 올해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개인적으로 엄청난 도움이 됐다"며 "예전과 비교하면 나이가 달라졌고 팀 내 위치도 달라졌다. 그리고 경기에 임하는 마인드도 달라졌다. 이전엔 앞만 보고 옆을 못 봤는데 지금은 시야가 확실히 넓어졌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1군 데뷔 후 통산 4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베테랑. PS에서만 통산 200타석 이상을 들어섰다. 그러나 이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한 타석을 위해 대기한다.
박정권은 "타격감을 유지하는 게 사실 힘들지만, 대타라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확률이 굉장히 떨어지는 게 대타 아닌가. 타석에 들어갈 때 내 스윙만 하자는 생각이다. 부담을 갖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며 "누구나 마지막은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년에 선수 생활을 해도 가을야구를 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굳은 각오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