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승준이 비자 발급 거부 소송에서 승소하고 법원의 힘을 얻었다. 다만 17년만의 입국이 성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승준을 놓고 대중적 비판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외교부까지 대법에 재상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서울고법은 지난 15일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LA총영사관이 2002년 2월 법무부장관의 입국금지 결정만을 이유로 유승준의 사증(비자) 발급 거부 처분을 내린 것은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결론내렸다. "LA총영사관이 유승준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사증 발급 결과를 통보했고, 처분 이유를 기재한 사증발급 거부 처분서를 작성해주지 않는 등 행정절차법을 위반한 하자가 있다"면서 앞선 대법원의 의견을 수용했다.
유승준 승소 소식에 그를 대신해 현장을 찾은 20여 명의 팬들은 환호했다. 인터뷰 등을 시도하려는 기자들에 "나가달라"고 경계하면서도, 함께 모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유승준 변호인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감사하다. 병무청이나 법무부에서 판결 취지를 고려해주셨으면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입국 금지 결정의 위법 여부는 '판단보류'
하지만 실질적 입국까지 넘어야 할 벽들은 남아 있다. 재판 후 공개된 판결문에서 판사는 "법무부 장관이 유승준 입국을 금지한 것이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고 적었다.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는 어떠한 처분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이 판결에서는 논외로 하고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면서 법무부의 입국 거부 자체가 위법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판결을 보류했다.
비례의 원칙은 유승준 측이 법무부의 입국금지 결정에 있어 위반한 부분이라 주장해온 근거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행정처분이 적법한지는 상급기관의 지시를 따랐는지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령의 규정과 입법목적, 비례·평등원칙 등 법의 일반원칙에 적합한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재량권 불행사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으로, 해당 처분을 취소해야 할 위법 사유가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1·2심에서는 유승준이 입국해 방송·연예 활동을 할 경우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국군장병들의 사기를 저하하고 병역의무 이행 의지를 약화해 병역기피 풍조를 낳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LA 총영사관의 처분이 정당했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괘씸죄vs동정론' 여론재판
입국 반대 여론은 여전히 우세하다. 지난 7월 대법원의 원심 파기 판결 이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유승준 입국 거부 청원'은 닷새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당시 청와대는 "병역의 의무를 다해온 대다수 대한민국 남성들의 헌신과 자긍심에 대한 존중의 문제"라며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이에 따라 향후 법무부, 병무청 등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출입국관리법을 면밀히 검토한 후 유승준에 대한 비자발급, 입국금지 등에 대해 판단 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고법은 판결문을 통해 찬반입장을 나란히 실었는데 "병역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할 듯한 언행을 보이면서 인기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 유승준도 JTBC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해 2002년 1월 해외 공연 등 명목으로 출국한 뒤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것에 대한 괘씸죄를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찬성 입장에 대해 고법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유승준에 대해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가혹해보인다"면서 외국인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강제퇴거명령을 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5년간 만 입국이 금지되는 점, 현행 재외동포법은 한국 남자가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국적을 이탈했더라도 41세가 되면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특히 이미 많은 국민으로부터 오랫동안 질타와 비난을 받아 나름대로 대가를 치렀다고도 봤다. 동정론에 힘을 실은 한 시민은 "모범을 보였으면 좋았겠지만 유승준의 행동은 편법이었다. 17년 동안 입국을 제한했으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유승준 변호인은 "한국 사회에 들어와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 이번 결과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영사관은 유승준의 비자 발급 여부를 다시 심사해야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법원에 재상고해 최종적인 판결을 구할 예정이다. 향후 재상고 등 진행 과정에서 법무부, 병무청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