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차라리 내가 두 명이면 좋을 텐데, 쌍둥이로 낳아주지. 아니면 키 큰 동생이라도….”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 박지수(22·KB)가 국가대표팀에 다녀오면 엄마한테 건네는 농담이다. ‘혹사’ 논란에 휩싸인 한국 여자농구, 그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슬픈 농담’이다.
한국 여자농구는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올여름 도쿄올림픽에 출전한다. 그런데 이문규(64)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은 ‘몰빵(표준어 몰방, 총포를 한꺼번에 집중해 쏘는 것, 스포츠에선 특정 선수에만 의존하는 것) 농구’ 논란에 휩싸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은 10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끝난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B조 3위(1승2패)로, 4개 팀 중 3위까지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잡았다. 문제는 영국과 2차전(한국 82-79 승)이었다. 한국 선수 12명 중 6명만 코트를 밟았다. 그중 3명(강이슬·김단비·박혜진)은 1초도 쉬지 못한 채 40분 풀타임을 뛰었다. 키 1m96㎝ 센터 박지수도 37분19초를 뛰었다. 4쿼터 중반까지 16점 차로 앞섰던 한국은 1점 차까지 쫓겼다가 겨우 이겼다. 주전의 체력이 고갈된 한국은 다음날 중국과 3차전에서 40점 차(한국 60-100 패)로 졌다. 스페인이 영국을 잡아준 덕분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 ‘당했다’.
11일 귀국길에 박지수는 “태극마크를 달고 창피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선수 혹사 문제를 공론화하는 ‘작심’ 발언이었다. 이문규 감독은 “혹사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국내 경기에서도) 선수들은 40분을 다 뛴다. 장기전도 아니고 올림픽 출전권을 위해 한 게임을 이겨야 하는 상황이라 영국전 40분은 죽기 살기로해야 했다”고 해명했다. 이 감독 말대로 영국에 가까스로 이겨 올림픽에 나가게 됐다. 그래도 많은 팬은 “투혼만 강요하는 구시대적 전술”이라며 감독 사퇴를 요구했다. 13일 KB금융그룹 천안연수원에서 훈련 중인 박지수를 찾아갔다. 그는 “선수들과 감독님 사이 불화설은 사실이 아니다. 선수가 감독님에 대해 감히 언급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논란에 관한 질문을 거듭하자 그는 조심스레 분위기를 전했다. “영국전 전날 배탈이 났다. 경기 당일 워밍업 때 숨통이 안 트였다. 감독님께 요청해 2쿼터에 3~4분 정도 쉬었다. 파울 트러블(5반칙 퇴장 직전까지 가는 것)에 걸려 몸싸움이 쉽지 않아 (코트 밖으로) 나가 쉬는 게 팀에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시절 벤치를 지킨 시간이 길다 보니, 벤치의 언니들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몰빵 농구’를 언급하자 “조심스럽다”던 박지수는 한참 생각하다 말을 이어갔다. “1차전(중국-스페인전)에서 당연히 스페인(세계 3위)이 이길 줄 알았는데 중국(9위)이 이겼다. 중국은 12명이 20~25분씩 나눠 뛰었다. ‘외국에서 우리를 어떻게 볼까’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중국전 대패에 대해서도 물었다. “점수 차가 많이 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아 포기해버리는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고 화가 났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중국을 81-80으로 꺾었다. 두 달 만의 리턴매치에서 망신을 당했다. 복수의 여자농구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대표선수 12명 중 부상 선수는 김정은(우리은행)뿐이었다. 발목이 좋지 않았던 강아정(KB)도 진통제를 투여 후 뛸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이 감독은 영국전에 6명만 썼다. 이 감독은 과거 부천 신세계 감독 시절부터 주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감독은 “벤치 멤버를 5분이라도 내보내 주전을 좀 쉬게 했으면 어땠을까. 전술적 패턴도 아쉬웠다. 영국전 4쿼터에 사이드에서 계속 3점 슛을 허용했다. 그런데도 지역방어를 대인방어로 바꾸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지수가 가장 아쉬워한 건 대회 준비 과정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남자고교 팀이나 여자프로팀 두 팀을 합한 팀과만 연습경기를 했다. 중국은 현지 평가전도 했다고 들었다. 우리끼리 ‘그 정도 준비한 건데, 대단한 거다’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고 전했다. 대표팀 센터에 배혜윤(삼성생명)이 있다. 하지만 박지수는 거의 풀타임으로 뛴다. 그는 “중국은 나보다도 큰 선수들이 5분씩 나눠 뛴다. 내가 지칠 때 쌩쌩한 선수가 들어온다”고 한탄했다. 도쿄올림픽에는 세계 1~9위 팀 등 모두 12개국이 참가한다. 한국(19위)보다 하위 순위 팀은 푸에르토리코(22위)뿐이다. 1승도 쉽지 않다. 박지수는 “12년 만의 올림픽인데, 속수무책으로 지고 싶지 않다. 배구도 올림픽을 계기로 인기가 올라갔다. 나도 김연경 언니처럼 잘하고 싶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문규 감독 임기는 이달 말까지다. 대한농구협회는 모든 건 절차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천안=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