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코치들이 지난 10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열린 스프링캠프 훈련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된 선수의 타격 관련 데이터를 태블릿 PC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사진 NC 다이노스]‘감(感)’ 야구 시대는 갔다. 대신 ‘스마트(smart)’ 야구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프로야구 구단들은 지난해부터 각종 첨단 장비를 본격적으로 구비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스프링캠프는 새로운 기기를 시험하는 무대다. 구단들은 각자 기획한 ‘스마트 야구’를 준비하고 실행하느라 분주하다.
120년 넘는 야구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MLB)로부터 데이터 야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최근 MLB 구단들은 정보통신기술(ICT)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눈썰미와 감각에 의존하는 야구보다 첨단 장비와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낸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MLB 특급 투수 저스틴 벌랜더(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17년 초고속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찾아냈다. 슬라이더를 던지는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지 않다는 걸 파악하고 자세를 수정했다. 이후 그의 슬라이더 위력이 향상됐다. 전반기 4.73이었던 평균자책점이 1.95까지 떨어졌다. 그의 드라마틱한 기록 변화를 본 다른 MLB 팀들도 ‘스마트 야구’ 경쟁에 뛰어들었다.
KBO리그 10개 팀도 최근 랩소도(투구·타격 추적 장비), 블라스트(정밀 모션 센서), 엣지트로닉(초고속 카메라) 등 첨단 장비들을 구입했다. 이 기기들은 투수와 타자들의 모습을 정밀하게 촬영하고,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생성한다.
최신 장비들은 품목에 따라 대당 가격이 400만~1000만원이다. 프로야구 팀들이 전반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추세이지만, ‘스마트 야구’를 시도하는 데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화 이글스는 지난해 10월 마무리 캠프에서 랩소도와 블라스트 등을 훈련에 활용했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리고 있는 스프링캠프에는 엣지트로닉을 설치했다. 특수 이미지 센서를 장착한 이 장비는 초당 882프레임까지 촬영할 수 있다. 초(超) 슬로모션을 통해 투수들은 자신이 던지는 공의 회전을 파악할 수 있다. 한화 투수 장민재는 “손에서 공을 놓을 때의 미세한 동작까지 체크할 수 있다. 내 공을 점검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각종 데이터를 선수들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롯데는 미국 통계분석 사이트 팬그래프닷컴 필진이었던 조쉬 헤르젠버그를 투수 코디네이터로 초빙했다. 헤르젠버그는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롯데 선수들에게 장비 활용과 데이터 분석법을 강의하고 있다.
NC 선수들은 스마트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NC는 2018년 데이터 코치직을 만들었고, 지난해 ‘D-라커 시스템’이라는 전력분석 영상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NC는 올해 애리조나 캠프에서 최신형 태블릿 PC 120개를 모든 코치진과 선수단에게 지급했다. 선수들은 첨단 장비로 측정한 데이터를 손쉽게 활용하고 있다. 여가시간에도 게임을 하는 것처럼 태블릿 PC를 통해 자신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이호준 NC 타격코치는 “데이터를 숫자로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바꿔 선수별로 제공하고 있다. 선수들의 이해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NC는 자신의 데이터만 보는 반면, 삼성 라이온즈는 첨단 장비로 측정한 데이터를 모든 팀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삼성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온나손 구장 게시판에는 삼성 선수들의 타구 속도, 타구 각도 등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누구의 수치가 좋은지 한눈에 들어온다. 삼성 캠프에서는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코치가 지적하고 선수가 지시를 따르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자신과 다른 선수들의 데이터를 비교하고, 스스로 약점을 보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 다른 의미의 ‘스마트 야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