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홈경기장인 고양체육관 1층에 우승 트로피 네 개가 있다. 오리온에서 이 트로피를 모두 들어 올린 이가 딱 한 명 있다. 선수로, 또 코치로 오리온과 함께한 김병철(47) 감독대행이다.
그는 프로 원년인 1997년부터 13시즌 간 오리온에서 뛰었다. 2002년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 우승, 2003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 은퇴한 뒤 그의 등 번호 10번은 영구결번됐다. 2013년 오리온 코치를 맡아 2016년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힘을 보탰다. 올 시즌 오리온은 최하위(12승29패)다. 19일 추일승 감독이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했다. 김병철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승격했다. 20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김 감독대행은 “추 감독님이 ‘무거운 짐을 안겨줘 미안하다. 언젠가는 네가 맡아야 할 자리였다. 너만의 색깔을 입히면 잘할 거고, 그래야 내가 편하게 경기 보러 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감독님과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추 전 감독은 시즌 중 타임아웃 때 김 코치에게 작전 지시를 맡기기도 했다.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병철이 형이 오리온을 이끌 때가 됐지’라고 적었다. 김병철은 고려대를 졸업한 직후인 1996년 창단 멤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합류했다. 인연을 맺은 지 25년 만에 지휘봉을 잡았다.
‘오래 기다렸다’는 얘기에 “코치 경험이 없었다면 앞길이 더 힘들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실 2003년 자유계약선수(FA)가 됐을 때 다른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창단 멤버의 의리로 남았다. 이젠 회사가 가족처럼 느껴지고, 편의점에 가도 오리온 제품에만 손이 간다”며 웃었다. 대구 동양 시절이던 2001~02시즌, 김병철은 김승현·전희철·마르커스 힉스·라이언 페리맨과 ‘막강’ 베스트 5를 구성했다. 1998~99시즌 대전 현대 베스트 5(이상민·조성원·추승균·조니 맥도웰·재키 존스)와 함께, 프로농구 역대 양대 최강팀으로 꼽힌다. 김 감독대행은 “내가 뛰어서가 아니다. 역대 최강이라 자부한다. 다른 팀이 우리 만나는 걸 겁냈다. 힉스는 맘만 먹으면 뭐든 다했고, 페리맨은 리바운드왕이었다. 공을 잡아 순식간에 속공을 밀고 올라갔다. (김)승현이가 패스를 주면 내가 뛰어가서 3점슛 2~3개를 연속해 꽂았다. 그러면 상대는 전의를 잃었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시절 3점슛을 1000개 이상 성공했다. 그 감각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는 그 자리에서 5개 던져 모두 성공시켰다.
오리온 슈터 허일영(35)은 “3점슛은 물론, 무빙슛 연습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전했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때 3점슛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무빙슛, 미는 슛, 스냅을 이용한 슛 등으로 폼을 계속 바꿨다. (허)일영이는3점슛 타점이 높아졌고, (이)승현이는 대학 시절보다 3점슛 시도가 늘었다. 또 타이밍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여드름 난 앳된 외모로 별명이 ‘플라잉 피터팬’이었다. 김 감독대행은 “고려대 시절, 한 손 레이업을 할 때 체공 시간이 길어 얻은 별명”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시절 함께 뛰었던 전희철(47) 서울 SK 코치, 현주엽(45) 창원 LG 감독과 지도자로 대결한다. 또 연세대 출신 이상민(48) 서울 삼성 감독, 문경은(49) 서울 SK 감독도 상대한다. ‘대학 시절 연세대가 더 강하지 않았나’ 묻자 그는 “내가 4학년 때 고려대가 전관왕이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김 감독대행은 26일 울산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홈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올 시즌 남은 경기는 13경기. 시즌이 끝나고 나면 ‘대행’ 꼬리표를 뗄 전망이다. 그는 “멀리 보기보다 바로 앞에 놓인 경기를 잘 치르겠다. 선수들을 잘 추스르겠다. 남은 경기를 잘해야 그 분위기가 다음 시즌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창의적이고, 재미있고, 절실한 농구를 하겠다”는 그는 훈련 도중 선수들을 향해 “신나게 해”라고 외쳤다. ‘2001~02시즌을 기대해도 될까’라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대해달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