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 LG 감독은 지난 5일 개막전 직전에 "로베르토 라모스가 30홈런을 때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라모스는 개막 직후부터 LG의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끊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역대 LG 외국인 야수 중 한 시즌에 30홈런을 달성한 선수는 없다. 2000년 찰스 스미스가 35홈런을 때려냈지만 삼성에서 7월 말에 방출돼, 8월부터 LG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누적된 것이다. 외국인 선수도 처음 방문한 뒤 규모에 놀랄 정도의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한 영향도 있지만, 외국인 선수의 부상과 부진의 영향이 크다.
라모스는 LG의 가장 취약 포지션인 1루수로 20일까지 팀이 치른 15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했다. LG는 최근 몇 년간 외국인 투수와 달리 타자 농사에는 실패했는데, 성적도 성적이지만 부상과 부진 등 여러 이유로 중도 이탈한 경우가 많다. 2008~2009년 로베르토 페타지니(타율 0.338 33홈런 135타점)를 제외하면 인상 깊은 활약을 남기고 떠난 외국인 선수가 거의 없다. 루이스 히메네스(타율 0.303 44홈런 178타점)가 세 시즌에 걸쳐 몸담았지만 기복이 심했고, 막판에는 부상으로 짐을 쌌다.
라모스는 LG의 이런 외국인 타자 아픔을 씻어주고 있다. 19일까지 타율 0.395로 부문 공동 4위, 홈런은 6개로 단독 1위에 올라 있다. 정확성과 장타력 모두 갖춘 셈이다. 타점은 11개. 장타율은 0.907로 1위에 포진해 있다. 류중일 감독이 칭찬한 선구안도 좋아 출루율은 0.500로 3위다. OPS는 1.407로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파워가 상당하다. 19일 삼성전에서 상대 선발 데이비드 뷰캐넌에게 뽑은 1회 3점 홈런의 비거리는 132m였다. 2경기 연속 홈런을 친 20일 경기에선 비거리 129m의 홈런을 기록했다. 류 감독은 라모스가 개막전에서 뽑은 2개의 2루타가 "다른 구장이었으면 담장을 넘어갔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하고, 상대 팀의 분석이 들어오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기대를 걸 수 있는 부분도 많다. 투수 유형별 타격 지표에 큰 차이가 없다. 좌타자인 라모스는 우투수(0.333, 21타수 7안타)와 사이드암 계열 투수(0.667, 9타수 6안타)에게 성적이 좋다.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라모스는 좌투수(0.308, 13타수 4안타)에게도 강한 모습이다. 좌투수에게 홈런 2개 뽑아냈고, 상대 장타율은 0.923으로 굉장히 높은 편이다. 지난해 교체로 영입된 카를로스 페게로는 굉장한 타구 스피드에 준수한 성적(52경기 타율 0.286 9홈런 44타점)을 올렸으나 좌투수 상대 타율이 0.224로 상대적 약점을 드러냈다.
타구의 방향도 부챗살이다. 외야 전반에 걸쳐 폭넓게 안타를 생산해내는 스프레이 히터에 가깝다. 19일까지 총 16개의 안타 가운데 우측으로 잡아당겨 친 안타가 8개다. 가운데 방면 안타가 5개, 밀어쳐 뽑아낸 안타도 4개다. 타구를 여러 방향으로 보낸다는 건 그만큼 약점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대 투수로선 타자 공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류중일 LG 감독은 "라모스는 좋은 선구안이 최고 장점이다. 또한, 떨어지는 공을 잘 참고 낮은 궤적의 공을 잘 공략한다"라며 "앞으로 국내 투수들이 공략할 하이 패스트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다. 물론 라모스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류 감독은 늘 흐뭇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