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즌 초반 페이스는 항상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커리어 평균치 다가선다. 후반기 또는 특정 기간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를 준다. 대체로 리그 정상급 선수들에게 붙는 수식어다.
코로나19 정국 여파로 5월에야 개막한 KBO 리그. 유독 봄을 타던 선수들이 선입견을 털어내고 있다. 대표 선수는 오재일(35·두산)이다.
야구팬도 잘 아는 리그 대표 슬로우 스타터다. 2019시즌 첫 23경기, 3·4월 일정을 치르며 타율 0.190·3홈런에 그쳤다. 2018시즌은 28경기에서 타율 0.235를 기록했다. 7홈런을 치며 장타력은 유지했지만, 득점권에서 35타수 6안타에 그치며 부진했다. 2017시즌 25경기에서도 1할 타율.
2017~2019시즌 모두 타율 0.279·21홈런 이상 기록했다. 여름이 오면 컨디션이 좋아졌고, 후반기에는 펄펄 날았다. 타선 주축으로 소속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선수는 매년 "의식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지만, 흐름은 일정했다.
올 시즌은 다르다. 개막 3주 차까지 출전한 13경기에서 타율 0.385·3홈런·14타점을 기록했다. 숫자보다 팀 기여도가 주목된다. 5월 10일 KT전 연장 10회말에는 끝내기 재역전승 발판을 만드는 동점 홈런을 쳤다. 13일 롯데전에서도 투수진이 8회말 수비에서 역전을 허용하자, 9회 타석에서 동점포를 쐈다. 결승타만 3개.
두산은 이 기간에 팀 타율 1위(0.323)를 기록했다. 오재일은 그 중심에 있다. 지난주 주말 3연전은 옆구리에 통증이 생긴 탓에 휴식을 취했지만, 그 전까지 뜨거웠다. 슬로우 스타터 이미지를 털어냈다.
KT 외인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30)도 KBO 리그에 입성한 뒤 맞이한 두 해 봄에 약했다. 2018시즌에는 홈런만 많았다. 타율은 0.250, 출루율은 0.319에 불과했다. 득점권에서도 0.225에 그쳤다. 4번 타순에 고정된 2019시즌도 개막 14경기에서 타율 0.212에 그쳤다. 홈런도 없었다. KT는 4승 10패를 기록했다.
올 시즌 지난주까지 치른 17경기에서 타율 0.423를 기록했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두산)에 이어 리그 2위 기록이다. 홈런은 4개. 23일 LG전에서 나온 역대 세 번째 좌·우 타석 연속 홈런은 현재 그의 타격감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다. 자세가 무너진 채로 스윙했지만 잠실구장 담장을 넘겼다.
강백호, 유한준 등 주축 타자들이 부상으로 빠져 있는 상황에서 타선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시즌 초반 난조, 4번 타자 거부감을 모두 털어낸 모양새다.
반전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두 타자와 달리 여전히 빈타에 시달리는 스타 플레이어도 있다. SK 간판 최정(33)과 키움 4번 타자 박병호(34)다. 개막 셋째 주까지 규정 타석을 채운 리그 타자 62명 가운데 최정은 가장 밑바닥이고, 박병호는 58번째다. 타율은 각각 0.125와 0.190.
최정은 최근 두 시즌 3·4월에 타율 0.250 대에 그쳤다. 슬로우 스타터로 볼 순 없다. 2018시즌은 시즌 타율도 0.244에 그쳤다. 홈런 35개를 친 덕분에 가렸다. 박병호는 빅리그 도전을 멈추고 국내 무대에 복귀한 2018·2019시즌 봄에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2019시즌에는 3~4월에 타율 0.351·7홈런을 기록했다.
이영하(23·두산)의 초반 난조로 주목된다. 네 경기에서 1승 2패·평균자책점 5.75를 기록했다. 2019시즌에는 첫 다섯 경기에서 4승을 챙겼다. 리그 대표 기대주다. 곧 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과 기대가 여전하다. 차라리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생겼다며 위안으로 삼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