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 키움 감독은 올 시즌 확고한 목표 하나가 있다. 바로 왼손 불펜 이영준(29)을 '8회 투수'로 키우는 거다.
8회는 투수로서 꽤 까다로운 이닝이다. 9회 나올 마무리 투수와 필승조를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해내야 한다. 세이브라는 훈장이 걸려있지 않지만, 중압감은 9회 못지않다. 손혁 감독은 "(8회 실점하면) 따라갈 이닝이 한 회밖에 남지 않으니까 8회 던지는 선수는 부담이 많다"고 했다.
이영준은 키움의 8회 투수 후보다. 손혁 감독은 대만 스프링캠프부터 이영준을 필승조로 쓰겠다고 구상했고 더 나아가 8회 투수로 기용 방향을 정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7라운드 KT 지명을 받은 이영준은 첫 시즌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소속팀이 없는 상태로 사회복무요원(금천구청)으로 군 문제를 해결했고 이후 테스트를 거쳐 어렵게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었다. 2017년 꿈에 그리던 1군 데뷔까지 했다. 그러나 2년 동안 별다른 활약 없이 1,2군을 오갔다.
두각을 나타낸 건 지난해이다. 정규시즌 29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2.97(33⅓이닝)을 기록했다.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선 4경기에 등판해 1홀드 평균자책점 제로로 더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야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았다. 손혁 감독은 가능성을 봤다. 그는 "지난해 풀 시즌을 치른 것도 아니고 필승조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리즈(포스트시즌) 때 좋은 모습을 보였다"며 "포스트시즌에서 잘 던지는 투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투수가 있는데 (이영준은) 오히려 좋은 내용을 보였다"고 칭찬했다.
키움은 시즌 초반 불펜의 단일대오가 약간 깨졌다. 마무리 조상우가 굳건하지만, 베테랑 김상수가 지난 1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김상수는 시즌 10경기 평균자책점이 12.27로 좋지 않았다. 왼손 계투라인을 이끌어야 하는 오주원도 이에 앞서 5월 30일 2군행을 통보받았다. 오주원은 시즌 평균자책점이 9.00으로 10점대에 육박했다. 조상우 등판 전까지 리드를 이어가야 하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손혁 감독은 "처음 필승조를 하는 선수에게 가혹한 걸 시키고 있지만 어쨌든 팀에 확실한 필승조가 되려면 강하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이영준의 연습량과 자세를 믿는다. 그렇게 하면 하늘도 도와주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2020시즌 초반 이영준의 출발은 불안했다. 13경기 평균자책점이 6.30으로 좋지 않다. 하지만 최근 4경기 연속 무실점 피칭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손 감독은 "평균자책점이 높긴 하지만 처음 필승조를 하면서 8회 그 정도 하면 잘해주고 있다"며 "조상우가 있는 9회까지 연결해준다는 게 쉬운 자리가 아니다"고 힘을 북돋워 줬다.
이영준은 "비중이 높아진 것에 감사하다. 중요한 상황에 나가보니까 긴장이 많이 되긴 되는 거 같다. 이 부분을 이겨내야 하고 조언이나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며 "주변에서 '신이 주신 기회'라고 말씀도 하시더라. 작년에 반짝했는데필승조로 올라가는 게 쉽냐고. 각 구단의 필승조를 하는 게 (불펜 투수들의) 꿈이니까 기회를 잘 잡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