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개월 전, 신태용 감독이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A대표팀을 포함해 U-23 대표팀 그리고 U-20 대표팀을 총괄하는 조건으로 4년 계약을 맺었다.
모하마드 이리아완 PSSI 회장을 필두로 PSSI는 신 감독에게 인도네시아 축구의 미래를 맡겼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인도네시아 축구의 체질 개선을 원했고, 장기적인 목표로 함께 가자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신 감독은 이런 인도네시아 축구의 비전에 매력을 느꼈고, 도장을 찍었다. 중국 클럽에서 3배 넘는 연봉을 제시했지만 마다하고 인도네시아 손을 잡은 이유다. 돈 보다 시간과 비전을 원했다. 신 감독은 시선을 장기적 발전에 맞췄다. 눈앞의 대회 성적보다는 4년 동안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인도네시아 축구 전체적인 발전을 계획했다. 로드맵도 열심히 짰다.
하지만 6개월 뒤, 이리아완 PSSI 회장을 필두로 PSSI의 얼굴이 바뀌었다. 신 감독과 미래를 그려보겠다는 희망찬 얼굴은 사라졌고, 탐욕으로 가득 찬 얼굴을 드러냈다. 얼굴과 함께 말도 바뀌었다. 그들의 약속은 감언이설로 둔갑했다. 그들은 진짜 얼굴을 드러내며 비전을 앗아갔다.
그리고 신 감독에게 '갑질'을 시작했다.
그들이 행한 갑질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신 감독의 연봉이 반토막 났다. PSSI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재정이 힘들어졌다며 신 감독 연봉 50% 삭감을 결정했다.
신 감독과 이렇다 할 논의도 없었다. 사실상 통보였다. 신 감독이 PSSI에 코로나19 성금 2만 달러(약 2500만원)를 기부하는 등 개인적인 노력과 책임은 외면한 채 강요로 일관했다.
게다가 50%나 깎았으면서도 제때 급여를 주지 않았다. 신 감독의 4, 5월 급여가 체불됐다. 뒤늦게 급여를 받기는 했지만 약속된 날짜에 주지 않은 것 역시 신뢰를 깨는 행위다.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보자던 PSSI는 지금 눈앞의 대회에 욕심을 내고 있다.
코앞에 닥친 대회는 신 감독의 경험과 선수들의 평가와 실험 무대로 삼아 다음을 기약하자던 PSSI는 갑자기 돌변하면서 성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열리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4강 이상, 11월 개최되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스즈키컵 같은 경우 신 감독은 2022년 대회 우승에 초점을 맞춰 로드맵을 짠 상태다.
가장 황당한 욕심은 2021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이다. 자국에서 열리기에 최고의 성적을 내야 한다는 방침, 그 방침이 탐욕을 불렀고, 4강이라는 허황된 꿈을 신 감독에게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다.
바라는 건 많으면서 지원은 주저하고 있다. 전폭적 지원 약속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신 감독은 2021년까지 설계한 로드맵을 PSSI에 제출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변경이 불가피해 새로운 로드맵을 지난 5월 다시 전달했다. 핵심은 7월부터 9월까지 6주 혹은 8주 동안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신 감독의 철학은 확실하다. 인도네시아보다 강한 상대들과 많이 겨뤄봐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안에서 머물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보다 강한 팀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로의 전지훈련을 계획했다.
대상은 PSSI가 그토록 U-20 월드컵 4강에 진출하기를 원하는 U-19 대표팀 선수들이다. 28명에서 30명 정도를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신 감독의 바람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PSSI에 요청했지만 어떤 구체적인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이 지금 반응하는 건 신 감독과 코치진들이 인도네시아로 돌아오는 부분이다.
신 감독은 지난 4월 4일 한국으로 일시 귀국한 상태다. PSSI는 인도네시아로 복귀해 대표팀 선수들을 지휘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일단 신 감독이 구상한 발전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건 인도네시아의 코로나19 상황이다. 17일 오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는 확진자가 4만명이 넘었고, 2231명이 사망했다.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이 넘나든다. 곧 동남아시아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훈련을 하고, 무슨 준비를 할 수 있겠는가. 안전은 중요하지 않다. 신 감독이 해외 전지훈련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이런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PSSI는 신 감독에게 인도네시아 현지인 코치를 제안했고, 신 감독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코치는 신 감독을 존중하지 않았다. 전지훈련을 마친 뒤 인사도 없이 홀로 집으로 갔고, 신 감독 허락없이 영상 분석 미팅에 들어오는 등 도를 넘는 행동을 일삼았다.
그러자 신 감독은 이 코치와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PSSI에 통보했다. PSSI는 신 감독에게 코치와 함께 해달라고 설득했지만 신 감독이 완강하자 코치 해임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달 뒤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해임된 코치가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PSSI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 감독의 철학을 공유하고 미래를 위해 함께 많은 노력을 했던 직원들은 어느날 갑자기 옷을 벗어야 했다. 신 감독에게 긍정적인 직원들의 해임, 신 감독의 날개를 꺾으려는 수작임을 의심할 수 있는 장면이다.
신 감독은 그래도 PSSI와 소통하고 대화하며 문제를 잘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벽에 대고 말하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해법도 돌파구도 진심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도 없다.
인도네시아는 1990년 한때 동남아시아의 강호로 통했다. 이후 추락과 추락을 거듭하며 지금의 상황까지 왔다. PSSI가 행한 갑질을 보면 그들이 왜 동남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는 지 알 수 있다. 그들이 왜 FIFA 랭킹 173위로 네팔(170위) 몰디브(155위) 미얀마(136위) 등의 국가들보다 뒤로 밀렸는 지 실감할 수 있다.
대표팀 감독 새로 뽑았다고 달라질 리 만무하다. PSSI. 그들이 바뀌지 않으면 인도네시아 축구는 영원히 바닥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