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눈이 없다. 바이러스는 자신이 옮겨 갈 사람을 따져보고 전파되지 않는다. 병, 특히 전염병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이런 전염병에 덜 걸리는 방법은 있다. 예방에 충실하고 위생에 철저하며 안전수칙을 지키고 방심하지 않는 것이다. '역대급' 전파력을 과시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랭킹 1위라고 해서 이 무서운 전염병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3·세르비아)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조코비치는 23일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도착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스스로 발표했다. 조코비치의 아내 옐레나도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다행히 조코비치의 자녀(1남 1녀)들은 음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조코비치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조코비치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프로 테니스 투어 대회가 줄어든 것을 염려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과 지역 사회를 돕겠다는 뜻으로 '아드리아 투어'라는 미니 투어 대회를 기획했다. 이 투어는 자신의 모국인 세르비아를 비롯해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등 동유럽 국가들을 순회하며 치러질 예정이었고 13일부터 이틀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1차 대회가, 20일부터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2차 대회가 치러졌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대회를 주최하면서 코로나19 안전수칙을 무시했고, 그 결과 자신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안전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불안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2차 대회 마지막 날인 21일 경기를 앞두고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불가리아·19위)가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고 이후 보르나 초리치(크로아티아·33위), 빅토르 트로이츠키(세르비아·184위)도 연달아 확진자로 분류됐다. 뿐만 아니라 조코비치의 트레이너, 디미트로프의 코치도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아드리아 투어는 코로나19 투어로 전락했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서로 끌어안고 악수와 대화를 나누고, 나이트 클럽 파티에 이벤트 농구 경기까지 치른 결과물이었다. 특히 이 경기에선 디미트로프가 조코비치, 알렉산더 츠베레프(독일),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 등과 함께 농구하는 모습이 대회 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와 테니스계에 확진자가 더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투어 1, 2차 대회에 참석한 수천 명이 넘는 팬들 역시 마스크 없이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즐겼다는 점이다. 관중석은 테니스 스타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빼곡했다. 대회 자원봉사자들도 마스크 없이 관중들을 안내하고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등 코로나19 안전수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세르비아 정부가 권고한 포옹, 뺨 키스, 악수 금지 및 최소 1m 거리두기 등의 사항은 모두 무시 당했다. 조코비치는 "이 대회는 순수한 마음과 좋은 의도로 기획한 것"이라며 "감염 사례가 나온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조코비치는 지난 4월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투어를 위해 접종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발언으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백신에 대한 회의론은 개인적인 의견이라 쳐도 조코비치 정도 되는 스타가 공공연하게 백신을 거부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스페인에 머물고 있던 지난 5월에는 스페인 당국의 코로나19 격리 규칙을 위반하고 클럽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US오픈 개최 소식에도 "코로나19 안전수칙을 지키면서 미국 뉴욕에 모여 테니스 대회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이라며 대회 개최 자체보다 안전수칙을 지키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조코비치의 방심과 무시는 그를 코로나19 양성으로 만들었고 더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