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부여에 심리적 장벽이 사라졌다. 처음 실시된 부상자 명단 제도가 변수가 많은 시즌을 운영하는 데 돌파구가 되고 있다.
키움 간판타자 박병호는 23일 잠실 LG전에서 멀티 홈런을 쳤다. 5월 23일 이후 한 달 만이다. 1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반등 계기를 마련했다. 선수는 사흘 동안 휴식을 취하며 심신을 달랜 점을 좋은 결과가 나온 배경으로 설명했다. 그는 17일에 손목과 무릎 통증을 이유로 부상자명단(10일)에 올랐다가 사흘 만에 복귀했고, 3경기 연속 안타를 쳤다.
KBO는 올 시즌부터 선수 보호를 위해 부상자명단을 신설했다. 10일, 15일, 30일 중 하나를 선택해 등재 신청이 가능하다. 한 선수당 최다 30일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10일' 활용이 매우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각광 받는 수준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일단 반드시 해당 날짜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점이다.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등재가 되어도, 상태가 호전되면 언제든지 1군에 등록할 수 있다. 박병호가 좋은 사례다.
이전에는 부상을 당하면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하고, 열흘 이상 채운 뒤에야 재등록할 수 있었다. 현장은 "모든 선수가 통증을 안고 뛴다"고 입을 모은다. 큰 부상뿐 아니라 잔부상도 많다. 그 정도가 심해졌을 때는 2~3일 휴식이 보약이다. 그러나 예년까지는 열흘, 최대 8경기나 이탈하기 때문에 엔트리에서 말소해 휴식을 주기 어려웠다.
메이저리그는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면 일수를 채워야 한다. KBO 리그의 부상자명단 제도는 다르다. 한 선수는 "경기 후반에 교체돼서 휴식을 부여받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2~3일이면 효과적인 심신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엔트리 구성을 결정하는 감독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다. 실제로 열흘을 모두 채우고 복귀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
통상적인 부상이 아닌 경우에도 유용하게 활용됐다. 최근 NC 주전 포수 양의지는 이석증 증세를 보였다. 워낙 체력 부담이 크고 주자와의 충돌도 잦은 포지션이지만, 선수도 처음 겪는 증세였다. 지난 16일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엿새 만에 다시 돌아왔다. 복귀전인 23일 수원 KT전에서는 결승 홈런을 치며 활약했다. 양의지는 "빠른 조치로 치료를 잘 받은 덕분이다"고 했다. 근육통이나 뼈에 문제가 있으면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 매뉴얼처럼 나와 있다. 그러나 생소한 증상이 있을 때도 있다. 이전이라면 엔트리 말소 여부를 두고 고민을 했겠지만, 올 시즌은 주저가 없다.
선수는 FA(프리에이전트) 자격 취득에 영향을 미치는 등록 일수 걱정도 없다. 선수당 주어진 부상자 명단 사용 기간(30일)은 엔트리에서 말소되어도 등록 일수를 인정받는다. 부상을 안고 애써 뛰면 자신과 팀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부담을 갖지 않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감독은 열흘이라는 시간적 압박을 지우고, 백업 선수나 2군 선수의 기량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동안 심리적 장벽이 있던 엔트리 말소라는 선택이 이전보다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