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글로벌 확산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핸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프로연맹)이 내놓은 상생안이 암초를 만났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이 K리그 이사회를 통과한 선수 임금 조정 권고안에 대해 ‘총력 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선수협은 20일 입장문을 내고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선수들의 동의 없는 임금 삭감을 저지하겠다. 선수들이 부당한 상황을 겪는다면 긴급대응 지원 체계를 구축해 총력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전 프로연맹은 ‘선수와 구단의 상생’을 목적으로 코로나19 고통 분담 권고안을 의결했다. 올 시즌 등록 선수 중 64%에 해당하는 기본급 3600만원 초과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하며, 잔여 4개월분 기본급의 10%를 감액한다는 내용이다. 연봉 중 실제 감액 비율은 3% 안팎이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권고안을 만든 배경에 대해 “코로나19로 경기수가 줄고 무관중 일정이 늘면서 구단별 소득이 감소했다. 해당 권고안을 적용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지만, 국가적 중대사에 K리그가 뜻을 모아 참여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결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의로 진행한 연봉 감액 노력이 기대만큼의 결실을 맺을 지 여부는 미지수다. 선수협이 ‘말장난’, ‘권고를 가장한 강제’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자칫 진흙탕 싸움으로 접어들지 않을까 우려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K리거 연봉 감액을 먼저 의제로 제시한 쪽은 선수협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K리그 개막이 미뤄지던 4월에 프로연맹에 연락을 취해 “선수들의 동의를 전제로 연봉을 감액해 고통 분담에 동참할 용의가 있다”며 협상을 제의했다.
이후 여러 차례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쳤지만, 진전이 없었다. 프로연맹이 ▲저연봉자 보호 ▲선수 동의 없는 일방적 삭감 불가 ▲합리적 삭감 비율 등 선수협 주장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선수협이 연봉 삭감 관련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아 제자리 걸음이 이어졌다. 이후 프로연맹은 협상의 카운터 파트너를 감독과 주장으로 바꿔 연봉 감액 권고안 마련 작업을 이어갔다.
프로연맹-선수협 사이의 신경전을 원만히 마무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대화다. 선수협은 “선수 연봉 감액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프로연맹이 앞서 코로나19로 인한 각 구단의 손실추정치 합계(576억원)를 공개했지만, 객관적으로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프로연맹은 선수협이 K리거 전체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맞는지 먼저 입증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선수협은 ‘K리그 등록 선수 743명 중 715명이 (선수협에) 가입했다’고 홍보하면서도 ‘혹시 모를 불이익 가능성’을 이유로 이사진을 제외한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K리그 구단의 재정 상황은 외부에 공개하기에 민감한 자료다. 선수협이 해당 데이터를 열람할 만한 권한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오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구단과 선수들의 상생을 위한 고통 분담 노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반 년을 넘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위협적인 만큼, 관련 논의가 내년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올해의 경우 연봉 삭감이 '권고' 형태여서 선수가 직접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내년엔 프로연맹과 구단의 재정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서로 대화하지 않으면서 상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에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차제에 코로나19 등 불가항력적 사태 발생에 따른 연봉 조정 규정을 명확히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수단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수준을 넘어, 합리적인 규정을 정하고 그에 따라 연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프로농구(NBA)의 경우 불가항력적 사유로 경기수가 줄어들 경우, 열리지 못한 경기 수에 비례해 선수 연봉을 감액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메이저리그야구(MLB)도 ‘국가 비상사태’로 인해 경기가 열리지 않을 땐 커미셔너의 직권으로 선수 계약 효력을 중단할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MLB는 현재 이 조항을 적용해 선수단 연봉 감액을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