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대통령배 최우수선수(MVP) 김진욱(18)은 강릉고의 첫 전국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본 뒤 "이번 대회에서 많이 던진 후배 최지민과 엄지민에게 고맙다. 남은 1년도 지금처럼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릉고는 지난 2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주최) 결승전에서 전통의 강호 신일고를 7-2로 꺾고 우승했다. 1975년 창단 이후 첫 전국대회 우승. 강릉고는 2019년 청룡기와 봉황대기, 지난 6월 황금사자기에서 준우승에 머문 아쉬움을 드디어 떨쳐냈다.
강원도는 '야구 불모지'로 통한다. 강릉고가 이번 대회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강원도 고교팀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저변이 약하다. 강원도 고교 팀은 4개, 중학교 팀 역시 4개 팀밖에 없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어린 선수들은 수도권 지역 학교로 옮기곤 한다.
이런 가운데 강릉고는 밝은 미래를 만들고 있다. 강릉고는 결승전에 3학년(4명)보다 저학년(2학년 4명, 1학년 1명)이 더 많이 선발 출장했다. 고교 야구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신일고는 3학년 6명, 1~2학년 3명이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강릉고는 특정 선수 의존도가 낮은 팀이다. 최재호 강릉고 감독은 "오로지 실력으로 선발 명단을 구성한다. 1~2학년 선수도 경험을 쌓아야 내년에 또 잘할 수 있다"라고 했다. 덕수고와 신일고 시절부터 '우승 청부사'로 통한 최 감독은 2016년부터 강릉고를 이끌고 있다.
강릉고 2학년 투수 엄지민은 올 시즌 9경기에서 20이닝을 던져 4승, 평균자책점 0.90을 기록했다. 2학년 최지민은 11경기 23이닝 동안 3실점만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둘은 7⅓이닝(무실점), 11⅔이닝(1자책)을 각각 던졌다. 강릉고는 앞선 대회 결승에서 김진욱이 투구수 제한에 걸려 아쉽게 패하고 말했다. 최 감독은 대통령배 결승에 앞서 "엄지민과 최지민이 3~4이닝을 잘 버텨주면 김진욱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의 작전이 잘 맞아떨어졌다.
강릉고 타선에도 2학년이 많다. 중심타자 김세민은 결승전에서 3-1로 앞선 7회 쐐기 3점 홈런을 쳤다. 정준재는 올 시즌 18경기에서 타율 0.352, 출루율 0.452를 기록하고 있다. 노성민은 이번 대회 14타수 7안타 6타점을 올렸다. 이 외에도 허인재(2학년)와 김예준(1학년)이 결승전에 선발 출장했다. 최 감독은 "내년 전력이 올해보다 전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투수진 5명이 괜찮다. 1학년 조경민도 기량이 좋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최 감독은 전국을 돌며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스카우트 한다. 수원북중에서 데려온 김진욱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 학년을 구분하지 않고 기량에 따라 출전 기회를 주기 때문에 1~3학년 선수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성장하고 있다.
최 감독은 "우리 선수 가운데 지역 출신은 4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비강원권 출신이다. 선수층이 얇아 전국을 돌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유심히 본다"라고 했다.
요즘에는 강릉고를 찾아오는 선수들도 꽤 많다. 강릉고가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다, 운동 여건도 좋다는 소문이 나자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오는 것이다. 최 감독은 강원 지역의 선수층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강원도 저변이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릉고의 대통령배 우승이 그 촉매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