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볼 수록, 알면 알 수록 궁금증과 흥미를 자극 시킨다. 시원한 가을, 신선한 작품이 관객들과 만난다.
10월 개봉을 준비 중인 영화 '소리도 없이(홍의정 감독)'가 21일 온라인 제작보고회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안전 예방 차원에서 온라인으로 치러졌으며, 홍의정 감독과 주연배우 유아인, 유재명이 참석에 영화를 처음 소개하는 소감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낌없이 털어놨다.
'소리도 없이'는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범죄 조직을 돕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린 채, 묵묵히 자기 일을 해 가며 살아가는 태인과 창복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며 기존 범죄 영화와는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한다. 독특한 캐릭터 설정과 아이러니한 사건이 키 포인트다.
유아인과 유재명은 '소리도 없이'가 주는 참신함에 이끌려 과감하게 출연을 결정했다. 시나리오의 강렬함은 물론, 묵직한 이야기가 던지는 수 많은 질문들 속에서 소중함과 행복함을 느꼈다는 마음이다.
"홍의정 감독님에 대한 기대감과 시나리오에 대한 놀라움이 선택의 가장 큰 이유였다"고 운을 뗀 유아인은 "시나리오가 쇼킹했고 특수했다.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적일 수 있고 익숙할법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조합해서 이상한 부위를 찌르는거지? 자극하는거지?' 싶었다. 톤은 옛날 영화 같지만 동시대적인 스토리도 강하다.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고 말했다.
유재명은 "배우들이 대본을 받을 때 기대를 많이 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소중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데, '소리도 없이'는 제목은 '소리도 없이' 인데 그 안에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풍부하기도 하고, 상징도 강하고, 담백하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하다. 작업을 하면서 배우로서 행복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홍의정 감독은 '소리도 없이'를 통해 상업영화 감독 데뷔 신고식을 치른다. 유재명과 유아인도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호흡을 맞췄다. 낯설지만 특별했던 이들의 첫 만남이 어떤 결과물로 탄생했을지 기대를 높인다.
홍의정 감독은 "오랜 기간 팬이었다. 혼자 상상만 했던, 아직도 믿기지 않는 캐스팅이다. '캐스팅을 했다'는 개념보다 내가 두 분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 마음으로 첫 미팅을 가졌다"며 "설득을 위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쏟아냈던 것 같은데 사실 너무 긴장해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그 날의 분위기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유재명은 "감독님 처음 만날 때 나름 선입견이 있었다. 글 자체가 주는 아우라가 있어 무서운 분일 것일 생각했다. 근데 굉장히 인간적이고 편한 분이었다"며 "지금 영화를 선보이기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 감독님도 개봉 준비를 하면서 속이 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전화, 문자를 하면서 '힘 빠지지 말고 이럴 때 좋은 작품 나온다'고 응원도 해드렸다. 그만큼 다음 글과 행보를 보고싶은 감독님이다"고 아낌없는 신뢰를 드러냈다.
유아인은 "나는 무서운 글을 쓴 무서운 분이라 생각했다. 무섭다는 것이 부정적 의미만 내포하고 있는건 아니다. 때론 긴장되고 흥분되는 일이다. 실제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현장을 선물해 주셨다"며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선보일 때 어떤 윤리적 결함을 참아주고 용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홍의정 감독님은 그런 부분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신 분이었다. 무언가 성스러웠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분이다. 오늘 이 자리도 감독님을 스타 감독으로 만드는, 초석을 다지는 자리다"고 귀띔해 웃음을 자아냈다.
'유아인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유아인은 이번 영화에서 말없이 묵묵히 범죄 조직의 뒷처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태인으로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어떤 연유에서 인지 말을 하지 않는 태인은 어쩌다 맡은 의뢰로 인해 계획에도 없던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 데뷔 후 처음으로 대사 없는 연기에 도전한 유아인은 섬세한 눈빛과 세밀한 몸짓으로 흡입력 있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비주얼도 강렬하다. 삭발 투혼에 15kg의 체중 증량까지 외적 변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아인은 "태인은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해내면서 펼치는 행위들이 묘한 밸런스를 만든다. 그래서 이 친구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게 된다. 외모는 이렇고 어떤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인물이다. '과연 좋은 삶, 선택, 선량함이란 뭘까. 세상의 악의나 부정적인 것들, 악행 이면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그런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대사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유아인은 "연기자 입장에서는 대사지만 인물로 봤을 때는 말이다. 말이 없다. 하지만 어떠한 알 수 없는 소리들이 가끔 삐져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소리를 아예 못내는 친구는 아닌 것 같다. 과거 어떤 일을 통해 세상에 뭔가를 표현하기 거부하는 인물, 세상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유아인에게 던진 홍의정 감독의 디렉션 역시 작품 만큼이나 신선했다고. 유아인은 "참고를 하라고 보내주신 자료가 고릴라 영상이었다. 어떤 작품, 연기 같은 레퍼런스가 아니었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선하냐"며 웃더니 "캐릭터에 대한 감독님의 애정과 접근 방식이 다르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홍의정 감독은 "하나 하나 소중하게 받아 주셔서 고마웠다"고 거들었다.
유재명은 범죄 조직의 청소부 창복으로 소개부터 신선한 인물을 연기했다. 창복은 살기 위해 누구보다 근면 성실하게 범죄 조직의 뒷처리 일을 한다. 허름한 옷차림부터 소심하면서도 친숙한 말투로 창복을 설계한 유재명은 창복이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다양한 감정 변화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유재명만의 명연기를 펼쳐냈다. 행동보다 말이 더 많은 설정 역시 말 없는 태인과 대비를 이루며 케미 시너지를 높인다.
유재명은 "창복은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인물이다. 늘 기도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고, 자기 한 몸 뉘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태인에게도 계란을 꼭 한 개만 넣으라고 한다. 그래도 충분하다고.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도 자기만의 논리가 있고 신념이 있을 것이다. 창복은 힘들 때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거다. 참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읊조린다"고 소개했다.
또 "의도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도 '이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복 된 일이다'고 한다. 삶이라는 것이 느닷없고, 계획없이 의도치 않은 일들이 발생할 때도 있다. 좌충우돌 속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선과 악은 무엇인지. 언제 어떤 선택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며 '소리도 없이'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 때로는 큰 형과 막내, 때로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던 유아인과 유재명, 태인과 창복이다. 유재명은 촬영 중 "어, 잘 맞는데?"라는 감탄사가 튀어 나왔을 정도로 유아인과의 연결고리를 체감했다는 후문이다.
유재명은 "아인 씨는 관객, 팬의 입장에서 바라보다가 만나게 됐다. 처음 만난 날 설레어 하면서 '팬이에요'라고 했다"며 "이후 같이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도 나눴는데,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재미있고 자유롭다는 느끼을 받았다. 후배 선배가 아닌 동료로서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유아인은 "유재명 선배님이 워낙 격 없이 대해 주셨다. ('팬이에요') 그런 말씀도 해주셨을 때 조금은 민망하고 쑥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말씀을 이렇게 편하게 주시지?' 싶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하더라"고 애정을 표했다.
이들은 감명깊게 본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재명은 유아인이 도올 김용옥과 함께 했던 KBS 1TV '도올아인 오방간다'를 꼬집으며 "물론 많은 좋은 영화들이 있지만 유아인의 의외성을 본건 작품이 아닌 방송이었던 것 같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그건 작품과는 다른 것 같다. 작품은 연습도 할 수 있고, 훈련된 사람들이 표현하는 공간인데 방송은 아니다. 내 세계관을 그대로 내보여야 한다. '멋있는 친구다' 생각했다"고 유아인 본연의 매력을 치켜 세웠다.
유아인은 "난 선배님이 출연한 드라마가 생각난다. '이태원 클라쓰'를 너무 잘 봤고, '응답하라' 시리즈도 보면서 '저렇게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분과 호흡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내심 희망했다. 이번에 이뤄졌다"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