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에는 내셔널리그를 떠나 아메리칸리그로 이적한 류현진(33·토론토)과 서른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의 새 출발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런저런 전망이 꽤 많았는데 두 투수의 2020년 페넌트레이스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류현진과 김광현은 '진화'가 멈추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류현진은 지난해 12월 FA(프리에이전트) 계약으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둥지를 틀었다. 계약 기간 4년, 총액 8000만 달러(939억원)를 받는 조건이었다. 워낙 강팀이 많은 지구라서 축하와 함께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2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 2패 평균자책점 2.69(67이닝 20자책점)를 기록했다. 세부 성적도 준수하다. 9이닝당 탈삼진이 9.67개로 2018년 기록한 9.73개에 이어 MLB 진출 이후 두 번째로 수치가 높았다. 땅볼 유도율은 51.1%로 커리어 하이. 9이닝당 홈런 허용도 0.81개로 2014년(0.47개) 이후 가장 적었다.
류현진은 미스터리한 투수에 가깝다. 평균 구속이 떨어져 올 시즌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시속 90.1마일(145㎞), 투심 패스트볼은 89.4마일(143.8㎞)에 불과했다. 체인지업을 받쳐주는 신무기로 떠오른 컷 패스트볼(이하 커터)조차 평균 구속이 85.7마일(137.9㎞)로 빠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파워 투수가 부럽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
나이를 먹고 부상을 겪으면 구속 저하를 피하기 어렵다. 류현진은 어깨 수술에서 회복된 2017년부터 포심 패스트볼 구사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올 시즌에는 그 비율이 23.8%에 그쳤다. 하지만 '숫자'에 속으면 안 된다. 3년 전부터 구사한 투심 패스트볼 구사율이 11%에 달했고 커터 비율은 24.3%까지 올랐다. 결국 빠른 공 계통의 합산이 59.1%로 60%에 육박했다. 상황에 따른 구사율 변화로 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MLB 최고 투수 자리를 지켜냈다. MLB 평균을 상회하는 정교한 컨트롤(9이닝당 볼넷 2.3개)은 덤이다.
김광현의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류현진이 부상 등을 극복하면서 지금의 틀을 잡았다면 김광현은 KBO리그 최고 수준의 파워 투수였던 과거를 뒤로하고 변화를 꾀하며 적응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보였던 마무리 투수를 한 경기로 마감하고 선발 투수로 돌아왔을 때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을 시작했다.
8경기(선발 7경기) 등판해 거둔 성적이 3승 무패 평균자책점 1.62(39이닝 7자책점)이다. 내셔널리그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정도다. 한편에서는 9이닝당 탈삼진(5.54개)과 BABIP(인플레이 타구의 안타 비율)가 지나치게 낮아 '운이 좋은 것 아니냐'는 얘길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언급할 때 그의 바뀐 투구 패턴을 고려해야 한다.
김광현의 올 시즌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0.3마일(145.3㎞)이다. 류현진과 비교하면 불과 시속 0.2마일(0.3㎞)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지난해 KBO리그에서 평균 구속 시속 147㎞를 상회하는 빠른 공을 던졌던 것과 비교하면 꽤 느려졌다. 파워 투수가 아닌 로케이션과 공배합에 신경 쓰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김광현인 셈이다. 마치 선배 류현진이나 같은 팀의 아담 웨인라이트 같은 투수로 변화는 과정으로 보인다. 또 이런 변화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김광현은 아직 주무기인 빠른 공과 슬라이더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현지 통계 사이트에서도 착시 현상으로 느끼는 커터형 슬라이더와 시속 79마일(127.1㎞)까지 구속을 떨어트린 느린 슬라이더로 타자들에게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로 인식되고 있다. 당장 내년 구종에 커터가 추가 되도 놀랄 필요가 없을 정도다.
류현진과 김광현은 나이가 한 살 차이지만 MLB 경력은 큰 차이가 있다. 분명한 것은 둘 다 과거는 현재의 진화를 만들어가는 시금석 역할을 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 때문에 이들의 내년 시즌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