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키움 히어로즈 구단이 발송한 보도자료 제목이다.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단이 감독과 이별하는 과정은 획일화 했다. 떠나는 이를 배려해 경질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래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구단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면 경질이다. 이 경우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반면 감독이 스스로 물러나면 사퇴다. 이때는 잔여 연봉을 줄 필요는 없다.
키움 구단이 말한 '자진 사퇴'는 선수와 감독이 서로를 배려한 결과로 볼 수 없다. 정규시즌 3위를 달리고 있고, 포스트시즌은 3주밖에 남지 않았다.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따라서 "손 감독이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한다"는 키움 구단의 말은 틀렸다.
키움 구단은 "손 감독의 내년 연봉까지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굳이 이 사실을 밝힌 건, 손 감독이 구단 지시에 따라 유니폼을 벗었다는 강력한 정황증거다.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서를 근거로 소송전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송사에 휘말린 경험이 많은 키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여러 증언과 정황을 보면 손 감독은 경질된 게 틀림없어 보인다. 손 감독은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 중이다. 그의 한 측근은 "자진 사퇴로 발표된 것에 대해 손 감독이 아주 속상해한다"고 전했다. 그는 "손 감독이 참고 있다. 내가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수 없냐'고까지 했다. 그래야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진짜 궁금한 게 있다. 손 감독은 과연 누구에게 잘렸는가. 이 질문에 키움 구단이 가진 난맥상이 담겨 있다.
감독의 인사권을 가진 사람은 구단 대표이사다. 그룹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어도, 형식상 대표이사의 인사 명령으로 이뤄진다. 키움의 경우 구단주(박세영)는 경영에 나서지 않고, 대표이사(하송)가 경영을 총괄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송 대표는 허민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의 복심이다. 사외이사 격인 허민 의장은 사실상 구단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허민 의장이 손 감독을 경질했을까. 그럴 가능성이 작지 않다.
게임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번 그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2011년 9월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창단한 그는 연 30억원 정도의 운영비를 대며 프로야구에 가지 못한 선수들을 지원했다. 메이저리그 투수 필 니크로에게서 너클볼을 배웠다는 그는 2014년 미국 독립리그 락랜드 볼더스에서 뛰며 승리투수가 된 적도 있다.
2018년 12월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그는 이듬해 키움 스프링캠프 청백전에 등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9년 2군 경기장에서 라이브 피칭을 한 적도 있다고 알려졌다. 즉, 허민 의장은 자신을 경영인 겸 경기인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허민 의장은 프로선수 출신이 아닌 김창현(35) 키움 감독대행보다 현장 경력이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손 감독의 경질 이유가 '성적 부진'이라면, 남은 경기는 허민 의장이 경기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거라는 추측이 나온다. 손 감독보다 현장 지휘를 잘할 자신이 있는 사람과 실질적인 인사권자가 일치하는 것이다. 이순철 해설위원이 "누군가 야구 감독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감독을 해임한 사람이 감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건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로 해석된다.
이게 그저 상상의 나래에 불과한가. 이 시점에 손 감독을 경질한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허민 의장은 몇 년 전부터 손 감독(당시 SK 투수코치)으로부터 피칭을 배웠다고 한다. 지난 겨울 장정석 전 감독 후임으로 손 감독을 영입한 인물도 허민 의장으로 알려져 있다. 손 감독을 해임한 사유는 성적부진 또는 그로 인한 불화 때문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손 감독을 해임할 수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이장석 전 대표다.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그는 KBO로부터 자격 박탈 상태에서도 '옥중경영'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손발이 묶인 상황이지만, 여전히 히어로즈의 최대 주주인 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2년 전 허민 의장이 선임된 건 이장석 전 대표의 뜻으로 알려졌다.
이장석 전 대표의 승부욕 또한 누구못지 않다. 2008년 히어로즈를 창단한 그는 이광환·김시진·염경엽 등 역대 사령탑들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압박했다. 뒷돈을 받고 선수를 파는 등 선수단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음에도 다른 구단보다 '놀랍게도' 높은 기준으로 판단하고 경영했다.
KBO 관계자는 "절차상 감독의 해임은 대표이사가 한 것으로 본다"고 원칙적으로 말했다. 하송 대표는 허민 의장의 뜻을 따랐을 것이다. 야구 관계자들은 허민 의장과 이장석 전 대표 사이에 어떤 계약 또는 약속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인 이장석 전 대표가 또 다른 M&A 스페셜리스트인 허민 의장에게 실권을 넘길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 KBO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겨울 조사를 벌였고, 키움 소수 주주들이 문화체육관광부에 감사를 청구했으나 밝혀진 내용이 없다. 수사가 아닌 조사나 감사에는 한계가 있다.
허민 의장과 이장석 전 대표의 밀약은 무엇일까. 방법은 달라도 구단 가치를 올리는 게 목표일 것이다. 그게 향후 구단을 매각하기에도 좋다. 키움 구단의 여러 기행 중 두 사람의 이해와 일치하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장석 전 대표는 KBO로부터 영구제명된 상태다. 야구단을 경영하다 범죄를 저지른 그가 구단 경영에 관여하는 건 KBO리그가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허민 의장은 2014년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원더스를 해체했다. 하송 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팀 운영 중단을 알렸지만, 해체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퓨처스리그(KBO 2군) 정규 편성 등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유일한 설명이었다. 야구단을 유지할 능력이 있었으나, KBO리그 참여가 여의치 않자 폐업을 선택했다.
허민 의장과 이장석 전 대표는 키움 구단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 그런데 그들은 책임을 질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키움 구단은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갈지 모른다. 심지어 손 감독을 자른 사람도 우리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