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9일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서 임직원들이 해머로 불량 무선전화기 제품을 내리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의 성공 노하우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이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빠르고 과감한 판단과 장기적 안목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 놓았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통념을 깬 역발상은 오늘날 삼성이 있게 한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불량 세탁기 조립 사건으로 신경영 선언
이 회장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는 1993년 6월 '신경영' 선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삼성사내방송팀(SBC)이 제작한 30분짜리 비디오테이프를 본 이 회장은 격노했다.
테이프에는 세탁기 뚜껑 규격이 맞지 않아 직원들이 칼로 깎아 내는 장면 등 불량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이 회장은 당장 서울로 전화를 걸어 사장들과 임원들을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켜 불량은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회장에 취임한 지 5년이 지나서도 '불량은 안 된다, 양이 아니라 질로 향해 가라'고 했는데 아직도 양을 외치고 있다“며 질타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지금까지 가장 유명하게 회자되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삼성은 물론 우리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삼성전자는 세탁기 생산 현장에서 불량이 나오면 즉시 라인을 멈추고 문제 해결 뒤 라인을 가동하는 '라인스톱제'가 생겼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인을 세워야 하는 생산 담당자들에게는 상당한 고통이었지만, 효과는 컸다.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1995년 휴대폰과 팩시밀리 등 제품 15만대를 태우는 화형식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무선전화 15만대 눈물의 화형식
하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1994년 말 삼성전자 휴대전화(애니콜) 불량률이 11.8%에 달하며 소비자 불만이 커졌다. 삼성전자의 휴대폰을 판매한 대리점 사장이 불량품을 팔았다며 고객에게 뺨을 얻어맞는 사건까지 일어났을 정도다.
이에 이 회장은 1995년 임직원 2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불량 휴대전화 15만대 이상(150억원 어치)을 동시에 불태우는 '애니콜 화형식'을 거행했다.
당시 무선부문 이사였던 이기태 전 삼성전자 사장을 포함해 임직원들은 제 손으로 만든 제품이 불타는 걸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이후 삼성은 휴대폰 품질 개선과 신기술 개발을 앞세웠다. 이른바 '이건희 애니콜'이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내놓으면서 글로벌 휴대폰 시장은 요동쳤다. 당시 피처폰의 강자였던 노키아의 점유율은 급락했고, 삼성 역시 타격을 입었다.
이 회장은 2010년 3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고 삼성도 어찌 될지 모른다. 다시 시작하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주문했다.
이 회장의 지시로 삼성전자는 무선사업부를 전면에 배치하고, 주력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구글 안드로이드로 전환했다. 2010년 5월 첫 스마트폰인 ‘갤럭시S’를 빠르게 내놨고, 2012년에는 총 4억대의 휴대폰을 팔아 글로벌 시장 점유율 25.2%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과감한 디지털TV 투자 '삼성 TV 신화' 일궈
이 회장은 2003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27%였던 브라운관 TV 생산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적 흐름에서, 당장 매출에 손실이 있더라도 PDP, LCD 등 디지털TV로 승부를 걸라는 것이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TV일류화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반도체 부문의 시스템 LSI 인력 200여 명을 TV사업부로 보내는 조직개편을 하는 등 TV 1위를 위한 체질변화에 나섰다. 이 회장의 혜안과 승부수가 먹혀들어 삼성전자는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보르도TV‘가 출시된 2006년 세계 TV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지 37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TV 부문에서 삼성이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변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 틈에 끼여 고사 직전까지 갔던 한국 TV를 세계인이 다시 보게 된 데는 삼성전자와 이건희 회장의 발 빠른 대응이 한몫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