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의 배우 이정은이 작품을 통해 이뤄낸 연대와 도전, 그리고 '기생충' 이후 달라진 것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정은은 9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혜수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신에서는 눈물이 안 나더라. 동료 배우들 연기를 볼 때 감동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단편영화 '여고생이다'로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지완 감독의 메가폰을 잡았다.
이정은은 세진에게 손을 내밀어준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 역할을 맡았다. 섬의 절벽 끝에서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의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현수 역을 맡은 김혜수, 세진 역 노정의와 호흡을 맞췄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은은 '내가 죽던 날'에 출연한 이유로 김혜수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김혜수가 한다는 게 제일 컸다"는 그는 "오래 전부터 김혜수를 알고 있었다. 스타인데, 친숙한 자리에서 만났다. 계속 변화하며 성장하는 배우 같다. 비슷한 나이인데, 기사를 보면 저 사람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수 있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면 힘든 과정을 통과한 얼굴이 있더라. '혜수씨 정말 배우 얼굴 같다'고 했다. 정말 좋은 얼굴이 많이 나오더라. 김혜수의 영향이 정말 크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거다"라고 말했다.
과거 이정은이 출연하던 연극을 김혜수가 제작 지원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자기 의상과 액세서리를 다 싸다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정은은 "우리와 키도 많이 차이난다. 그리고 한번 쓱 오면 고개가 돌아가게끔 광이 난다. 나에겐 스타다. 내가 아이 같고, 여신 같은 사람이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다. 동년배라곤 하지만, 김혜수는 꿈 속의 요정 같은 느낌이다. 옆에 있으면 지금도 신기하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요정 김혜수의 활약은 계속 됐다. 이정은은 김혜수와 관련된 미담을 전하면서, 그와 쌓았던 연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정은은 "김혜수가 정말 진솔하다. 작업하는 것도 동생하고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무대를 찾아와서 응원하더라. 남을 추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가정은 어렵지만 재능이 반짝이는 젊은 배우들을 자기가 아는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소개한다. 정말 품이 넓다. 아무 연고도 없고, 지인과 학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다"면서 "연대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사회에서 어떤 척도로 생각하는 학력이나 연고 없이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마음을 실어줄 수 있다. 그런게 필요하고 서로에게 힘이 된다. 여성만 연대하는 게 아니라 남성과도 연대할 수 있다. 공평하게 가는 것이 연대의 힘이 되지 않나"고 말했다.
언제나 호평만 받는 이정은이지만 최근에는 또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매 작품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다 못해 장악하는 이정은. 일각에서 나오는 "평범한 연기는 잘 못하지 않나"라는 말에 도전 의식을 불태운다고. "이전에는 좋은 것만 많이 봤는데 이제는 나쁜 것도 보게 된다. 매번 역할을 맡을 때마다 우연인지 이야기 상에서 가려져 있거나 반전을 가진 독특한 역할이 주어졌다"는 그는 "제 연기의 폭이 넓다기보다 이야기 속에서 조명받는 역할이지 않았나 한다. 최근에 받았던 혹평 중에 '평범한 연기는 잘 못하지 않나'라는 말이 있었다. 이것도 제가 도전해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영화 또한 이정은의 도전 의식을 불태울 수 있었던 작품이다. 사고로 인해 목소리를 잃은 인물을 연기하면서 러닝타임을 통틀어 몇 마디의 대사만 쇳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정은은 "어느날 되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더라.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배우로서 어떨까 했다. 그때 이 시나리오가 왔다.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배우로선 재미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쇳소리 연기에 대해 "영화는 후시가 끝날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 포착한 소리도 있고, 후시에서도 작업을 한다. 소리를 만드는 과정이 있다. 어떻게 하면 되게 절실한 소리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했다. 후시 작업을 통해 완성한 소리"라고 설명했다.
'기생충'으로 필모그래피에 쐐기를 받은 이정은. '기생충' 이후 달라진 것에 대해 묻자 "아무래도 찾아주시는 데가 많아진 것 같다. 그게 되게 부담스럽다. 매니저에게 '실력이 별로 없는데, 주변에서 많이 찾아주는게 부담스러워 죽겠다'고 이야기했다. 어쩄든 연기를 정말 좋아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다는 건 좋다. 그만큼 책임감도 따라와줘야 하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기생충' 이후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다는 근황도 전했다. "없었던 건 아닌데, 코로나19 때문에 멈췄다. 자연스럽게 일이 중단이 됐다. 언젠가 또 기회가 오겠지. 준비를 좀 해야겠지. 현장에서 영어로 소통해야 하니까. 영어를 못하는데, 외워서 했다. 개인적으로 공부를 계속 하고 있다. 한국이 더 콘텐츠가 좋아지고 그래서 굳이 꼭 나가야하나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