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53) 두산 감독이 10일 KT와의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선발투수 최원준을 조기 강판시킨 이유를 설명한 말이다. 최원준은 비교적 잘 버텼다. 멜 로하스 주니어에게 맞은 솔로 홈런이 유일한 실점. 그러나 김태형 감독은 '숫자'가 아닌 선수의 '기세'를 감지했다. 단호하고 빠른 결단을 내렸다.
김태형 감독은 정규시즌에서도 종종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투수를 교체했다. 타자와 승부 중에 마운드를 내려온 투수도 있다. 난타를 당하거나, 제구 난조가 심각한 상태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포수 교체도 마찬가지다. 주전 포수 박세혁이 6회 이전, 그것도 이닝 도중에 안방을 내준 장면도 있었다.
김태형 감독은 점수 차, 볼카운트, 이닝 등 숫자 정보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싸움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는 걸 경계한다. 선수의 기용 배경을 설명할 때 기술·기량보다는 태도나 기세에 대해 말한다.
그는 젊은 투수, 경험이 적은 투수일수록 배포가 필요하다고 본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고도, 타자 바깥쪽으로 피해 가는 공을 던지는 투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2020년 미야자키(일본) 스프링캠프에서 마운드 1군 전력감을 물색할 때 그는 "안타를 맞더라도 4~5구 안에 타자와 승부를 보겠다는 공격적인 투수가 필요하다.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 결과는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포수의 리드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한다. 김태형 감독은 "몸쪽 빠른 공에 약한 타자라는 분석 자료가 있으면 뭐하나. 그 코스에 던질 수 있는 제구가 없다면 소용없다. 투수 리드는 그저 공 배합을 하는 게 아니다. 투수가 가장 자신 있는 구종과 코스를 주문하고, 투수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형 감독은 싸움꾼 기질은 기 싸움이 팽팽한 단기전에서 더 강하게 발산되고 있다. 그는 선수들에게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주문하고 있다. 평소보다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는 경우도 많다. 김태형 감독은 10일 PO 2차전 9회 말 마무리 투수 이영하가 선두타자 박경수에게 볼넷을 내주자,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 "150㎞ 던질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가운데로 꽂아라"고 조언했다. 4-1, 3점 차 앞선 상황을 충분히 활용해 싸우라는 주문이었다. 이영하는 이후 상대한 세 타자를 모두 범타 처리했다.
이 경기 3회 초 2사 1·3루에서 나온 김재환의 적시타에도 벤치의 지원이 있었다. 김재환은 KT 선발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에게 볼 3개를 얻어낸 뒤 4구를 공략해 우전 적시타를 생산했다. 볼카운트 3볼-0스트라이크에서 타자는 볼넷을 기다리기 마련이지만, 김태형 감독은 타격 사인을 냈다. "4번 타자가 3볼에서 들어온 공을 안 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공격적인 스윙을 주문했다.
PO 1차전 9회 초 결승타를 친 김인태에게도 김태형 감독은 볼카운트가 불리해지기 전에 대결하라고 조언했다. 두산 배터리가 KT 베테랑 타자들에게 고전할 때는 "(어려운) 수 싸움보다는 빠른 공 승부가 낫다"고 당부했다. 김태형 감독의 이런 메시지들이 모여 두산의 공격력과 자신감을 높이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이미 두산을 5년(2015~19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전력이 약화한 올해는 우승권에서 멀어지는가 싶더니, 정규시즌 마지막에 3위에 올랐다. 그리고 6년 연속 KS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데이터 야구가 대세로 자리 잡은 시대, 김태형 감독 특유의 저돌적인 파이터 기질이 더 돋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