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경기도 남양주에서 충전 중 불 난 코나 전기차(EV). 남양주소방서 제공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전기차 리콜(자발적 시정조치)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서 화재 사고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우려되는 점은 불이 난 전기차의 배터리 가운데 LG화학·삼성SDI 등 한국산 제품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업계는 계속되는 리콜 사태에 'K배터리'의 명성이 흠집 나진 않을지 우려하는 눈치다.
코나에 이어 볼트도 리콜…LG 배터리 화재 위험
1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화재 발생 위험이 있다며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리콜하기로 했다.
리콜 대상은 2017~2019년 사이 생산된 쉐보레 볼트 전기차 6만8600여 대다. 이 차에 장착된 고전압 배터리는 LG화학 오창 공장에서 생산됐다.
GM은 "해당 모델의 자동차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됐을 때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정확한 화재 발생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볼트 EV 배터리 충전량을 90%로 제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충전량을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는 다음 주부터 각 대리점에서 업데이트된다. 국내 역시 한국GM이 동일한 리콜을 진행한다.
문제는 LG화학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리콜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앞서 현대차는 2017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제작된 코나EV 7만7000대를 리콜 중이다. 지난달 8일 국내에서 2만5564대를 리콜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북미 1만1137대, 유럽 3만7366대, 중국과 인도 등 기타 지역 3000여 대 등 해외에서도 5만1000여 대를 리콜했다.
리콜 결정 당시 국토교통부는 현대차의 리콜 결정을 알리며, 화재 원인과 관련 “고전압 배터리의 배터리셀 제조 불량으로 인한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코나에 장착된 배터리 공급사 또한 LG화학이다.
BMW·포드도 삼성 배터리 리콜
더 큰 문제는 다른 회사의 전기차들도 K배터리와 관련해 화재 발생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데 있다.
독일 BMW와 미국 포드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의 배터리 화재 가능성 때문에 리콜 조치를 발표했는데, 두 회사 모두 삼성SDI제 배터리가 탑재됐다.
BMW는 최근 세단 2‧3‧5‧7시리즈와 스포츠다목적차(SUV) X1‧X2‧X3‧X5, 스포츠카 i8 쿠페 등 사실상 대부분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의 총 2만6900여 대에 대해 리콜을 실시 중이다.
이와 관련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지난 8~9월 발생한 BMW PHEV는 화재 사고가 3건 더 있었다"며 "배터리 셀 결함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결국 배터리 셀 제조 불량 문제라는 진단이다. BMW의 배터리 셀은 삼성SDI가 공급한다.
최근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포드의 유럽판매용 쿠가 PHEV 모델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2만7000여 대 리콜이 진행 중이다.
포드 독일법인은 이번 리콜 사태로 친환경차 출시가 지연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상당한 벌금까지 물게 됐다.
급기야 포드는 지난달 19일 올해 출시키로 한 준중형 SUV 이스케이프의 PHEV 모델 출시도 내년으로 연기했다.
포드 관계자는 "이스케이프 PHEV는 쿠가 PHEV와 동일한 배터리 셀 등을 사용한다"며 "쿠가 PHEV의 배터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생산을 중단할 것이다"고 발표했다.
‘끙끙’ 앓는 K배터리
잇따른 화재 사고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원인 규명과 별개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는 것만으로도 큰 악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라 불릴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지위가 공고해 한국 산업에까지 악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K배터리의 점유율은 독보적이다. 올 1~9월까지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의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80.8 GWh인데, 이중 국내 배터리 3사(LG화학·SK이노베이션·삼성SDI)가 35.1%(28.4 GWh)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는 연이어 불거지는 안전성 논란의 원인으로 '배터리 제조 불량'이 몰리는 데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에는 배터리 셀, 배터리 팩, 배터리 관리시스템, 냉각시스템 등 여러 장치와 시스템이 장착된다"며 "배터리 제조사는 배터리 셀을 주로 생산하고 완성차 업체나 부품사에서 배터리 팩, 배터리 모듈 등을 담당해 배터리를 완성하는 데 배터리 셀을 화재 원인으로 지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명확하게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서 배터리 결함을 꼽는 것은 배터리 시장 성장세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에너지저장시스템(ESS)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가 지적돼 국내 ESS 시장이 고사했던 악몽이 떠오른다"며 "배터리 업계가 성장통을 강하게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만 화재 원인이 밝혀져 불확실성이 해소될 경우 배터리 업계 성장은 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