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 KDB산업은행이 이를 위해 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톱10 항공사 탄생의 첫 삽을 뜨게 됐다.
이에 국내 1, 2위 항공사가 한솥밥을 먹게 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면서 업계에서는 항공산업 안정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유동성이 악화된 대한항공마저 부실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16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이사회는 이날 오전 8시쯤 서울 중구 서소문 대한항공 사옥에서 이사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이사회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확정하기 위해 긴급 소집됐으며, 이사회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김석동 이사회 의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전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산경장)’를 열고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넘기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이번 산경장에서는 산업은행은 한진칼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데 활용할 수 있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과 영구채 전환 방식 등을 통한 8000억원의 자금 투입이 결정됐다.
한진칼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30.77%)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인수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총 1조8000억원으로, 내년 초 2조5000억원 유상증자를 통해 인수대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주된 이유는 코로나19로 고사 직전에 있는 국내 항공산업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서다”며 “항공산업의 구조 개편을 통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추가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해 국민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판단이 이번 거래를 성사시킨 배경이다”고 설명했다.
당초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고민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대한항공 창업이념인 ‘수송보국’을 바탕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보전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조원태 회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양사 임직원들이 모든 처우와 복지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소비자의 편익을 향상하고 통합 시너지를 바탕으로 더욱 안전한 항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한항공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부실’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산은의 도움과 유상증자로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인수한다고 해도,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 위기를 타개하고 2291%(상반기 말 기준)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느냐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던 HDC현대산업개발이 정상화에 필요하다고 책정했던 자본확충 금액은 2조1772억원에 이른다.
현재 대한항공도 투입할 실탄이 충분하지 않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유동성 악화로 사업부, 자산 매각 등까지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유상증자로 1조127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고, 8월에는 한앤컴퍼니에 알짜 사업부인 기내식·기판사업을 9906억원에 양도했다. 또 자본 확충의 목적으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왕산마리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 지분 등 회사 소유 자산 매각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코로나19 속에서도 흑자를 내고 있긴 하나, 불확실성이 짙은 상황인 건 아시아나항공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큰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유상증자가 관건인 듯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에 따른 독과점 문제도 떠안고 가야 한다. 두 항공사의 국내선 수송객 점유율은 자회사까지 합칠 경우 절반을 넘어선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대한항공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다.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양사의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더하면 62.5%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 문제 등을 심사해 양사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써는 불허할 가능성보다는 소비자 피해 최소화 등 조건부 승인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