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가드 김민구(29)는 한때 ‘제2의 허재’로 불렸다. 201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6년 만에 한국 농구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허재처럼 올라운드 플레이어였고, 수비 리바운드를 잡아 골 밑까지 쭉 치고 나가던 특유의 자신감이 닮았다.
김민구는 그해 허재 감독이 맡고 있던 전주 KCC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무대에서 오래 뛴 아이라 클라크(현 현대모비스 코치)는 “신인 김민구는 외국인 선수까지 통틀어 최고 재능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김민구는 2014년 6월 대표팀 차출 기간 중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냈다. 신호등을 들이받고 크게 다쳤다. 재활 끝에 14개월 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과거의 농구 천재 모습은 사라졌다. 지난 시즌 원주 DB에서 최저연봉 3500만원을 받았다.
DB에서 재기의 신호탄을 쐈다. 그리고 올해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었다. 역대 최고 연봉 인상률(557%)을 기록하며 2억3000만원에 사인했다. 김민구는 19일 인천 전자랜드전에서 21점을 몰아쳤다. 수훈 선수로 뽑혀 인터뷰도 했지만, 농구 팬 커뮤니티의 반응은 싸늘했다. 팬들은 과거 잘못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24일 경기 용인시 현대모비스 훈련장에서 만난 김민구는 사과부터 했다. 그는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을 거다. 제 잘못이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죄송하고, 그 죄송함은 평생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고로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당시 농구계에서는 “김민구 농구 인생은 끝났다”고들 했다. 그는 “골반이 탈골됐고, 고관절이 깨졌다. 뼈가 부러지며 뼛조각이 신경을 찔렀다. 신경이 손상돼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엄청난 사고 후유증 속에서도 김민구는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 재활에 전념했다. 그는 “한 시즌이 끝나면 또 다른 (재활) 시즌이 시작됐다. 재활이 힘들어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통증을 이겨내려고 투여한 진통제 탓에 병문안 온 이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고마웠던 사람들 얘기를 하던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희대 동기인 DB 센터 김종규(29)가 큰 힘이 됐다. 김민구는 “종규가 매일 전화해주고, 날 데리러 오고, 항상 옆에 있어 줬다. 시즌 후 훈련도 함께했다”고 했다.
허재 전 KCC 감독 이름도 꺼냈다. 김민구는 “KCC 전지훈련 때 날 주려고 고관절에 좋다는 비싼 약재를 사 오셨다. 나 때문에 (2015년) KCC 감독을 그만두신 것 같아 많이 울었다. 죄송한 마음에 몇 년간 전화도 못 드렸다”고 했다.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김민구는 “대표팀 감독일 때 제게 ‘절대 자만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 이번에는 ‘나 잘 알지? 나 믿고 와라’고 말씀해주셨다. 감독님 밑에서 다시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김민구는 올 시즌 식스맨으로 뛴다. 전성기 기량과 비교하면 70%에도 못 미친다. 돌파할 때 스텝이 주춤주춤하기도 한다. 유재학 감독은 “비 오는 날이면 몸이 쑤신다고 한다. 그래도 몸 상태가 좋아졌다. 다만 마음속에 조급함이 있다. 농구의 길을 아는 선수인 만큼, 그 조급함을 눌러주려고 한다”고 했다.
김민구는 “팀에 처음 와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감독님이 100% 만족하게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가끔 내가 잘했을 시절 영상을 본다. 그땐 생각한 대로 몸이 가 있었다. 지금은 마음은 가는데 몸이 안 따라줄 때가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한다. 최대한 심플하게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김민구는 “나는 좋지 않은 일의 본보기다. 꼭 재기해 다른 의미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