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가든웨딩 콘셉트로 꾸며진 가상공간에 아바타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다 한 여성 아바타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마이크로 실제 접속자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대부분이 10대인 이용자들은 근처에 모여 그녀의 노래를 감상한다. 또 다른 남성 아바타가 자신의 마이크를 켜서 함께 노래를 부르자 가상세계에서 작은 듀엣 공연이 펼쳐졌다.
네이버 손자회사 네이버제트의 가상현실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네이버는 제페토의 전 세계 가입자를 2억명 가까이 모을 정도로 가상현실 서비스에서 글로벌 시장을 넓히고 있다. 반면 국내 1위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은 글로벌 기업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기술력을 총동원했음에도 1년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 제페토, 10대 이용자 북적…“친구 추천으로 왔어요”
네이버제트가 2018년 8월 출시한 제페토는 현재까지 1억90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00년대 초 국내 온라인 생태계를 주름잡았던 싸이월드처럼 10대들의 '대세' 놀이 공간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특정 시장을 타깃으로 홍보 활동을 펼친 것도 아닌데 해외 이용자 비중은 90%에 달한다. 미래 핵심 콘텐트 소비층인 10대 이용자의 비중은 80%를 차지하고 있다.
6일 네이버 관계자는 "얼굴 인식, AR 기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다양한 가상 액티비티, K팝을 접목한 포토·비디오 부스 등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 서비스 덕에 전 세계 10대 이용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SNS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제트는 ‘제페토’라는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데 멈추지 않고 콘텐트를 차별화하는 데 역량을 쏟았다. 인기 아이돌의 IP를 확보하기 위해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로부터 총 12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 CJ ENM의 1인 창작자 지원 사업 다이아티비와 협업해 가상 크리에이터를 육성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파트너십 확장에 따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제페토가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 팝 가수 셀레나 고메즈와 손잡고 만든 3D 아바타 뮤직비디오 '아이스크림'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1억 달성을 앞두고 있다. 해당 뮤직비디오 촬영장을 3D로 구현한 제페토 대화방에는 지금까지 140만명이 방문했다.
아이돌 연계 프로젝트 외에도 공항과 런웨이, 산타광장 등 제페토가 직접 만든 가상공간에는 적게는 10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이 들른 것으로 집계됐다. 공연장 콘셉트의 가상공간에서 만난 한 10대 이용자는 "친구의 추천으로 (제페토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디즈니,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부터 블랙핑크와 같은 아이돌 등 여러 글로벌 IP(지식재산권)와의 협업뿐 아니라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콘텐트 교류 등으로 10대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네이버제트는 제페토가 시간이 날 때 잠깐 즐기는 일회성 콘텐트가 아닌, 현실과 연결된 소통공간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자신의 캐릭터와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근황을 전하는 SNS 기능은 인스타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이용자는 직접 가상공간을 설계하는 도구인 '빌드잇'으로 테마룸을 조성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다. 샌드박스 장르의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처럼 개방형 서비스를 지향한다.
SKT 소셜월드 '썰렁'…즐길 거리가 없다
'5G 콘텐트 왕국'을 꿈꾸는 SK텔레콤 역시 '소셜월드'라는 특화 서비스를 2019년 11월에 내놨다.
특히 서비스의 확산 속도를 높이고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파트너십을 체결, 독립형 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오큘러스고'를 함께 출시했다.
작년 3월에는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모바일 전용 앱을 론칭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5G 콘텐트 강화 전략을 발표하면서 최대 100명까지 동시 접속해 회의, 공연, 전시 등의 활동을 가상공간에서 할 수 있는 '버추얼 밋업'을 소개했다.
당시 유영상 SK텔레콤 MNO사업 대표는 "언택트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실감미디어 콘텐트를 선보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출시 1년이 지났음에도 소셜월드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가상현실 앱인 '점프 VR'을 통해 접속 가능한 소셜월드에는 이날 7개의 방이 개설됐다. 각 방의 수용 인원은 8명에서 121명까지 다양했지만, 총 접속 인원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방의 종류는 회의룸, 스포츠 방송 시청룸, 파티룸으로 한정적이었다. 파티룸에서 만난 한 10대 이용자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접속한다. 기본 앱으로 탑재돼 있어 이용하게 됐다"며 "채팅 기능이 추가되면서 그나마 소통이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서비스 출시와 동시에 가상체험 서비스 개발사인 카카오 VX, 게임사 넥슨과 제휴를 맺고 소셜월드 콘텐트 확장에 나섰다. 이를 통해 카카오프렌즈 IP를 활용한 '프렌즈 VR 월드', '카트라이더룸'을 만들었지만, 단순 영상 시청 외에는 아직 즐길 거리가 없다.
SK텔레콤 관계자는 "2020년 기준으로 연초에 40만건을 기록했던 점프 VR 앱 다운로드 수가 연말 180만건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며 "VR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돼있지 않지만, 조금 더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