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풀어야 할 최대 숙제 중 하나인 지배구조 개편이 첫걸음부터 꼬이고 있다.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정지작업으로 보이는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계열사 3사 합병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정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도 해결하지 못했던 지배구조 개편을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가 10대 기업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가 해결되지 않았다. 순환출자가 총수일가 지배권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현대차뿐이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크게 4개의 순환출자 고리로 오너가가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순환출자가 지배구조의 위험요인으로 꼽혀왔다.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와 더불어 그룹의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투명한 지배구조는 반드시 이뤄야 할 숙제다. 공정위가 정 회장을 그룹의 공식적인 총수로 지정하기 위해서라도 지배구조 개편은 필요하다.
시스템 통합(SI) 전문기업인 현대오토에버는 지난해 12월 현대오트론·현대엠엔소프트와 3사 합병을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소프트웨어 계열사의 합병은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 회장이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지분을 9.57%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상장 계열사 중 23.29%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외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3사 합병에 제동을 걸었다. 제출된 증권신고서를 심사한 금감원은 지난 19일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합리적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에게 유리한 합병 구조라고 불만을 토로하자 금감원이 이를 시정하라고 한 셈이다.
주주들의 반발로 인해 3사의 합병 비율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오토에버-오트론-엠엔소프트의 합병 비율이 1대 0.11대 0.95로 책정됐다. 하지만 최근 금감원의 요청으로 한 차례 조정돼 합병 비율은 1대 0.13대 0.98로 변경됐다. 합병가액도 엠엔소프트가 8만8381원에서 9만1045원으로, 오트론이 1만864원에서 1만2808원으로 늘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아직 적정한 비율이 아니라며 정정신고서를 재차 요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3사 합병은 현대차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대주주에게 유리한 합병으로 지적을 받는 등 제동이 걸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이 발목을 잡았던 전례가 있어 이번 소프트웨어 3사 합병의 잡음이 더욱 아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대차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인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이면 사익편취 규제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결국 지배구조를 정의선→존속 법인(지주사)→현대차→기아차로 간소화하는 게 핵심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공정위는 재벌개혁이라는 정책 목표를 수립하며 순환출자 구조 해소에 칼을 빼 들었다. 공정위는 순환출자 구조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주식 처분 명령 등 시정조치와 함께 법 위반과 관련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계열 출자회사 대표를 검찰에 고발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
공정위의 표적이 된 현대차는 2015~2018년 기업집단별 과징금·과태료 부과현황에서 2108억원으로 불명예 1위를 차지했다. 또 2015년부터 2020년 8월까지 담합 관련 과징금도 1777억원을 부과받아 단연 1위에 올랐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계속 연구 중이다. 주주 친화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방향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