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의 성관계 동영상을 동의 없이 유포한 것으로 조사된 40대 남성에게 검찰이 2번 연속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원본이 아닌 재촬영물을 유포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과거 대법원 판례가 영향을 끼쳤다. 피해자는 최근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오세영)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반포 등 혐의로 고소당한 사업가 A(42) 씨에 대해 지난해 12월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2019년 8월에도 같은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했다. 당시에는 고소가 아닌 경찰의 인지 수사로 사건이 불거졌다. A씨가 여성 B씨와 성관계를 가지며 찍은 동영상 4개와 사진 2개를 허락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지인에게 전송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유포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었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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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법 “재촬영물은 처벌 못 해”…무혐의
하지만 2018년 8월 30일 나온 다른 사건의 대법원 판단이 A씨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대법원은 옛 성폭력처벌법에 근거해 “다른 사람의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한 촬영물을 제공한 경우에만 처벌되고 재촬영물을 제공한 경우에는 처벌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A 씨가 퍼뜨린 동영상과 사진들이 재촬영물로 인정됐고, 검찰은 대법원 판결 등을 고려해 A씨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것이다.
A씨는 “컴퓨터로 원본 영상을 재생하고 그것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재촬영해 전송했다”며 “원본을 그대로 전송하기에는 용량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A 씨가 동영상 등을 무단으로 유포한 건 맞지만, 법의 사각지대 탓에 혐의없음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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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영상 1개 원본” 고소…또 무혐의
그러자 피해 여성 B 씨는 “적어도 동영상 1개는 재촬영물이 아닌 원본이다”라고 주장하며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해당 동영상에 대해 “원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설 감정 업체의 의견도 첨부했다.
다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원본 파일이 있을 경우에만 해당 동영상의 원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촬영기기로 보이는 A 씨의 과거 휴대전화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A 씨가 “없다”고 진술한 탓에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2번째 혐의없음 처분이 나온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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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검찰, 휴대폰 제조사도 틀려…수사다시 해달라” 항고
피해자 B씨 측은 2번째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고 비판한다. 검찰이 불기소이유서에서 “동영상 원본이 있는 A씨의 과거 휴대전화 모델이 ‘LG전자의 베가레이서3’인 것으로 보인다”고 썼는데, 베가레이서3 제조사는 LG전자가 아닌 팬택이라는 점 등 때문이다. B씨의 변호인은 “그만큼 면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B씨는 최근 “다시 수사를 해달라”며 서울고검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그는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 성폭력처벌법은 원본뿐만 아니라 재촬영물 등을 유포하는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2018년 12월 18일 개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