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6일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제3차 이사회. 프로야구 10개 구단 사장(KIA는 위임)이 모인 자리에서 논의된 첫째 안건은 공인대리인 제도였다. 각 구단 사장들은 "2018년부터 대리인 제도를 시행한다"고 뜻을 모았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대리인(에이전트)을 공식 협상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다.
다만 100% 개방은 아니었다. '대리인 1명(법인 포함)이 보유할 수 있는 인원을 총 15명(구단당 3명)으로 제한한다'는 조항도 함께 의결했다. 이른바 '독과점 방지법'이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한 KBO 공인대리인 제도는 각종 '꼼수'가 난무하는 난장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도를 관장하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선수협)의 부실 관리·감독 속에 인원 제한 조항을 피하기 위한 갖은 편법이 자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매니지먼트 계약이다. 일부 에이전시는 선수협 보고 사안이 아닌 매니지먼트 계약을 통해 주요 선수를 포섭한다. 매니지먼트 계약은 해당 선수 연봉 협상이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에 일체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암암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A 구단 단장은 "(대리인이 등록되지 않은) 투수 B와 연봉 협상을 하는데 선수가 대답을 바로 안 하더라. (매니지먼트 계약을 한 대리인의) 조언을 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몇몇 선수들은 매니지먼트 계약과 대리인 계약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선수는 대리인 계약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선수협에 등록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두 가지를 혼용해 사용하다 보니 구단이 선수 대리인을 헷갈리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FA 자격을 행사할 때는 대리인으로 등록했다가 거취가 확정되면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전환하는 것도 부지기수. 일종의 '위장 이혼'으로 인원 제한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간다.
개인 사업자를 따로 등록하는 '문어발식 운영'도 문제다. 현행 선수협 규정에는 법인이 대리할 수 있는 선수 인원도 총 15명(구단당 3명)이다. 법인에 공인대리인 10명이 있더라도 150명이 아닌 15명 인원 제한이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선수협에 대리인을 따로 등록하는 편법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한 법인에 공인대리인 2명이 개별적으로 선수협에 신고하면 최대 30명까지 보유가 가능하다. 선수협 대리인 집계 현황에는 '개인'으로 처리돼 있지만, 정작 그 뒤엔 대형 에이전시가 있다.
규정 위반이지만 선수협의 관리 감독이 허술한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다. 선수협에 개인 대리인과 계약이 보고된 선수 C에게 "대리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개인 대리인의 이름이 아닌 법인명을 말했다. 선수는 해당 법인에 소속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등록 현황은 그렇지 않다. 선수와 대리인의 분쟁이 발생한다면, 책임 소재에서 논란이 일 수 있다.
2017년 9월 의결된 '독과점 방지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갖은 편법으로 인해 무력화된 지 이미 오래다. 오히려 이로 인한 폐해가 쌓여가고 있다. 현장에서는 "인원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심지어 특정 대리인의 성장을 경계하던 구단 내부에서도 "바꿀 때가 됐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원을 제한하면 대리인은 수임료(계약 최대 5%)가 많이 발생하는 FA 계약에만 주력할 수밖에 없다. 저년차, 저연봉 선수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인위적으로 인원을 제한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선수협의 감시 기능 회복과 편법을 자행한 대리인들의 반성이다. 현행 KBO 공인대리인 자격을 유지 중인 사람은 총 82명(2020년 12월 31일 기준). 이 중 절반인 41명이 선수와 대리인 계약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인원 제한을 풀어달라"는 게 몇몇 대리인들의 '배부른' 주장으로 들릴 수 있다.
한 공인대리인은 "숫자가 편법을 만든다. 야구인이 다 같이 모여서 대리인 제도에 대해 논의하고 공부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상생도 가능하다"며 "페어 플레이하는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그쳐선 안 된다. 제도를 강하게 만드는 건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선수협은 이 부분에서 떳떳한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