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이 항암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몸속 세균과 바이러스에서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처럼 인체 내 세균과 바이러스 등 미생물 생태계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차세대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다. 장내 미생물 수만 200조개에 달하는 등 무한한 잠재력으로 '새로운 우주'가 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놈앤컴퍼니를 이끄는 배지수 공동 대표를 만나 마이크로바이옴 세계를 들여다봤다.
글로벌 제약사가 러브콜…기술수출 가시화
지난 1일 경기도 성남 판교의 본사에서 만난 배 대표는 커피나 차가 아닌 콜라를 권했다. 글로벌 제약사와 ‘깜짝 계약’을 성사시킨 벤처기업답게 형식적이고 딱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배 대표는 “대학 때부터 좋아하던 것을 유지하고 있다. 콜라의 청량감과 액티브적인 요소를 좋아한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배 대표는 지놈앤컴피니를 “새로운 분야인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을 성실하게 도전해나가고 있는 벤처다”고 소개했다. 벤처답게 무모하고 과감하게 도전한 덕분에 짧은 역사에도 다국적 글로벌 제약사인 독일 머크, 미국 화이자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지난해 1월 임상시험 협력 및 공급 계약을 맺은 지놈앤컴퍼니는 아시아 기업 최초로 다국적 제약사와 면역 항암제 병용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배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듣보잡’이었던 지놈앤컴퍼니가 200여 개의 경쟁사를 따돌리고 결실의 맺은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게릴라식 각개전투는 기본이고,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가면 40개 업체와 미팅을 하는 등 지놈앤컴퍼니를 알리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그는 “2019년 12월 긴급 전화가 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인을 하자는 얘기를 1년 6개월 만에 마침내 듣게 됐다”고 회상했다.
2015년 설립된 지놈앤컴퍼니는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고 퇴짜를 맞기도 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학회들에 꾸준히 참석하며 얼굴을 알렸다”며 “무엇보다 계획했던 대로 제대로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준 노력들이 후한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면역 항암치료제인 'GEN-001'은 기술수출이 추진되고 있다.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요로상피암 등에 적응증을 가지고 있는 GEN-001은 지난해 연말 첫 환자 투여가 이뤄지는 등 임상 1상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배 대표는 “복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 수출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면역 항암제부터 세계 최초 자폐증 치료제까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각광받는 이유는 독성이 없기 때문이다. 치료제 개발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로 꼽히는 독성 연구를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배 대표는 “독성이 없는 물질의 경우 임상 연구에서 환자 모집이 수월하다. 의료 현장에서도 독성이 없으면 어떠한 치료제와도 병용될 수 있다”며 “암 완치자의 경우 암 재발 우려에 조심해야 하는데,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독성이 없어 평생 먹어도 되는 항암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놈앤컴퍼니는 머크·화이자가 보유한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와 함께 암 환자에 투여하는 병용 요법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개발로 인해 지놈앤컴퍼니의 역량은 배가되고 있다. 배 대표는 “임상과 관련해 2주에 한 번씩 회의를 진행한다. 머크와 화이자 쪽에서 전문가 20명이 들어오는데 정말 대단한 경험을 하고 있다”며 “세계 최고의 임상팀이 지원하고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우리에게 더없이 큰 자산이 되고 있다”고 반겼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옴을 활용한 면역 항암제에 관한 독보적인 연구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월 광주과학기술원 연구팀과 함께 발표한 논문이 관련 분야 최고의 학술지인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에 게재됐다. 235명의 삼성서울병원 폐암 환자와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균주마다 암 억제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난제로 알려진 약물작용기전을 규명해 마이크로바이옴 항암제 개발 가능성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놈앤컴퍼니는 지노클(GNOCLE) 플랫폼을 활용해 유익한 세균을 찾는 데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배 대표는 “우리는 임상 데이터를 해석하는 능력이 강하다. 환자 데이터와 세균들과의 연관성을 분석해 유익균을 발견하고 면역 항암 가능성을 분석한다”고 했다.
지놈앤컴퍼니는 항암제 외에도 세계 최초로 자폐증 치료제 개발도 하고 있다. 배 대표는 “현재 자폐증 치료제가 없어 우울증 약 등을 차용해서 쓰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2상에 준하는 임상 시험 계획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넣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벤처다움 앞세워 글로벌 빅파마 도전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 세포수보다 2배 많은데 유전자 수까지 포함하면 100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제 막 태동한 단계였지만 유전 분석기술의 발전으로 미생물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단계까지 진입했다. 배 대표는 “70~80kg 성인은 세균만 5kg 정도 차지한다. 몸속에 세균이 가득하다”며 “5년 전에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약이 되냐 마냐’가 이슈였다면 지금은 발전을 거듭해 ‘과연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고 했다.
BBC리서치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18년 5600만 달러에서 2020년 7억7800만 달러까지 성장하고 있다. 2024년에는 약 94억 달러(약 10조5000억원)까지 고속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배 대표는 “우리 몸에는 암세포가 수시로 생기고 면역체계에 의해서 사라진다. 하지만 무균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면역 항암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었다"며 "이 실험으로 세균이 있어야 면역항암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고, 세균이 중요한 기전을 한다는 게 밝혀졌다”고 세균의 역할을 강조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세균의 신세계’는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과감한 기동력은 필수다. 배 대표는 “대기업의 경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3년 동안 제 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시스템상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에 대한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발전 속도 면에서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아 벤처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콜라를 한 모금 음미했다.
의사·경영 컨설턴트·대관 업무 등 다양한 경험으로 무장한 배 대표는 “안주하고 지키는 데서 벗어나 계속 도전하는 행보로 길리어드(코로나19 치료제 렘데시비르 개발 미 제약사) 같은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국에서 글로벌 빅파마가 나온다면 벤처기업에서 나올 것이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