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찍고 부산. 선동열(58) 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올겨울 가장 바쁜 야구인이다. 프로와 아마추어 야구 현장을 누비며 '일타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지난 17일 부산시 기장군 기장·현대차 드림볼파크에 진행 중인 KT의 스프링캠프를 찾았다. 선수 시절 룸메이트였던 '후배' 이강철 KT 감독의 부탁을 받고 젊은 투수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하기 위해서였다.
선동열 전 감독은 KT 선수단과의 상견례에서 지난해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한 쾌거를 축하한 뒤 "(여러분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 스스럼없이 물어봐 달라. 아는 범위 안에서 답해주겠다"고 말했다.
KT 투수조는 이날 강풍과 추위 탓에 캐치볼만 소화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23일까지 KT 캠프에 머문다. 본격적인 레슨은 19일 시작한다. 2020시즌 신인왕 소형준은 "(타자와의 승부는) 결국 정신력에서 갈린다고 생각한다. 선동열 감독님이 선수 시절 어떤 생각을 하며 투구하셨는지 가장 궁금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2019~2020년 연속으로 10승을 기록한 배제성도 "경기 운영 능력과 마운드 위에서의 강한 멘털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17일 KT의 오전 훈련이 끝나자 바로 부산 시내에 있는 개성고로 향했다. 모교에서 야구 선수들을 지도 중인 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도 '국보 투수'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김응용 전 회장은 "이강철 감독과 통화하다가 선 감독이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루만 시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오후 2시에 온다더니 40분 일찍 도착했더라. 점심도 안 먹고 왔나 보다"라며 웃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개성고 투수 13명 전원의 불펜 피칭을 일일이 지켜보며 보완점을 알려줬다. 중심 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자세와 투수판을 밟은 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직접 투구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바람직한 투구 준비 자세를 묻는 한 선수에게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선수들이 신나게 공을 던지면 "아주 좋다"고 소리치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개인별 지도가 끝난 뒤에는 실내 연습장에서 짧은 강연을 시작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변화구를 잘 던지면 좋겠지만, 여러분들은 아직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가진 힘을 투구에 온전히 싣는 게 먼저다. 캐치볼과 스텝앤드스로(step and throw)가 그래서 중요하다. 하체 운동과 러닝도 습관화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이어 "김응용 회장님께서 다소 걱정을 하셨는데 내가 볼 때는 밸런스 좋은 투수가 많더라. 다들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김응용 전 회장은 지도를 마친 선 감독을 향해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존칭을 쓰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지난 11~15일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LG의 스프링캠프에 방문했다. 이민호, 고우석, 이정용 등 'LG의 미래'로 불리는 젊은 투수들을 지도했다. 이민호를 향해 "대투수로 될 성장할 자질이 있다"고 극찬했다. 차명석 LG 단장은 "기회가 되면 선 감독님을 다시 모시고 싶다"고 했다.
선동열 전 감독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다. 메이저리그 최신 이론을 공부하는 그는 지난해 일간스포츠에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하며 새로운 야구 이론을 만들고 있다. LG 캠프에서는 트랙맨(레이더를 활용해 투구·타구 궤적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봤다. 데이터 결과를 연구했던 선동열 전 감독이 실제 장비를 보고 큰 흥미를 느꼈다고.
선동열 전 감독은 "2005년생 개성고 선수에게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니 기분 묘하더라. 오늘 하루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며 웃었다. 선동열 전 감독의 캠프 방문을 원하는 구단은 또 있다고 한다. 국보 투수의 광폭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