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플레이오프(PO) 3차전 종료 뒤 김연경(33)이 남긴 말이다. 그는 이 경기에서 23득점, 공격 성공률 59.46%를 기록하며 소속팀 흥국생명의 세트 스코어 3-0(25-12, 25-14, 25-18) 승리를 이끌었다. 승부처마다 중요한 득점을 해내며 에이스다운 플레이를 보여줬다. 시리즈 전적 2승1패를 기록한 흥국생명은 정규시즌 1위 GS칼텍스가 기다리고 있는 챔피언결정전(챔프전·5전3승제)에 진출했다.
흥국생명은 개막 전 우승 후보 0순위로 평가됐다. 자유계약선수(FA) 세터 이다영을 영입했고 ,'배구 여제' 김연경도 도쿄올림픽 대비를 위해 국내 무대로 복귀하며 전력이 급상승했다. 그러나 이다영-재영 쌍둥이 자매가 학폭(학교폭력) 사태로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이탈한 뒤 급격히 전력이 약해졌다. 5·6라운드 10경기에서 8패(2승)를 당했다. PO 전망도 어두웠다. 22일 2차전 1세트에서는 '한 세트 최저 득점(6점)' 불명예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치른 PO. 흥국생명은 1승 뒤 1패를 당하며 분위기를 내줬지만, 한층 끈끈해진 팀워크를 발휘하며 최종 무대에 올랐다. 김연경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딛고 스스로 승리를 일궈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동료들을 향해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젊은 선수들을 향해 "각자 자리에서 해줘야 할 역할을 잘 수행해줬다. 대견하다"며 웃었다.
김연경은 부상을 안고 PO 3차전에 나섰다. 2차전 막판 수비 도중 오른 손가락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전을 강행했고, 코트 위에서 누구보다도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뒤에는 "트레이너가 (손가락) 테이핑을 잘 해줘서 문제없이 뛰었다. 이 정도 통증은 모든 선수가 안고 있는 수준"이라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김연경은 지난해 1월 치러진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예선 결승전에서도 복근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 한국의 본선 진출을 이끈 바 있다.
김연경은 지난 18일 열린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한국에서 계속 배구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해외 무대 재진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PO 3차전은 김연경이 한국에서 뛰는 마지막 무대가 될 뻔했다. 패하면 소속팀이 탈락하는 경기였다. 김연경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후회 없이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싶었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오히려 더 부담이 없었고, 동료들과 더 재미있게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연경은 PO 개막 직전, 동료들과 상의해 이번 봄 배구 전용 슬로건을 만들었다. 바로 '끝까지 간다'. 흥국생명은 5라운드까지 1위를 지켰지만, 학폭 사태 뒤 자리를 수성하지 못했고 2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도전하는 입장에서 챔프전을 치른다. 흥국생명의 슬로건에선 투지만큼은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PO에서도 전망을 뒤엎고 먼저 2승을 따냈다. 흥국생명 슬로건에서 '끝'이 의미하는 바는 챔프전 5차전이 아니다. 우승이다.
김연경은 "GS칼텍스는 특정 선수 의존도가 낮다. 윙 스파이커 포지션 전력이 두루 좋다. 어떻게 마크할지가 중요할 것 같다"며 챔프전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 김연경은 해외 무대 진출 직전 치른 2008~09시즌 흥국생명의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상대도 GS칼텍스였다. 흥국생명이 PO를 치르고 올라간 상황도 닮았다. 김연경은 "부담은 그때(2009년)보다 크지 않다. 오히려 (지켜야 하는) GS칼텍스가 더 부담이 아닐까. 이번 PO를 좋게 마무리했기 때문에 챔프전도 기대가 된다. 배구 팬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챔프전 1차전은 26일 오후 7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다. 두 팀은 정규시즌에 3승3패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