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영국 레스터에서 열린 2020~21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인 38라운드 토트넘-레스터시티전. 종료 휘슬이 울린 뒤 토트넘 해리 케인(28)과 손흥민(29), 델리 알리(25) 등 셋은 다 함께 포옹했다. 영국 이브닝 스탠다드는 “10초 이상 이어진 그들의 감성적 포옹은, 케인이 올여름 토트넘을 떠날 거란 느낌을 더했다. 토트넘 한 시대의 끝인가”라고 보도했다. 케인이 각별했던 손흥민, 알리와 작별인사하는 듯했다. 우승을 갈망하는 케인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이적이 유력하다.
손흥민의 시즌 최종전도 그렇게 끝났다. 손흥민은 이날 3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4-2 역전승을 이끌었다. 1-2로 뒤진 후반 31분, 활처럼 휘는 코너킥으로 자책골을 유도했다. 레스터시티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이 펀칭한 공이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2-2로 맞선 후반 41분, 손흥민은 백힐 패스로 케인-가레스 베일로 이어진 결승골에 기여했다.
손흥민에게 환희와 비애가 교차한 시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리그 17골(득점 공동 4위)로, 차범근의 한국인 유럽 리그 최다골(1985~85시즌 레버쿠젠)과 타이다. 각종 대회를 통틀어 한 시즌 개인 최다골(22골), 최다 공격포인트(39개)를 경신했다.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는 뜻의 ‘찰칵 세리머니’를 22차례나 펼쳤다. 토트넘 구단 최초로 두 시즌 연속 10(골)-10(도움)을 달성했다. 케인과 프리미어리그 단일시즌 최다골 합작(14골) 기록도 세웠다.
팀 성적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토트넘은 7위(18승 8무 12패·승점 62)에 그쳤다. 4위까지인 다음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6위까지인 유로파리그 출전권도 얻지 못했다. 7위 자격으로 유로파 콘퍼런스리그에 나선다. 다음 시즌부터 신설되는 유럽 클럽대항전 ‘3부’ 격인 대회다. 리그컵 준우승으로 무관 기간도 13년으로 늘었다.
손흥민은 3월 햄스트링 부상 여파로 유로파리그 16강 탈락을 지켜만 봤다. 4월에는 손흥민이 따르던 조세 모리뉴 감독이 경질됐다. 맨유 팬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
손흥민이 역대 최고 시즌을 보냈다고 할 수 있을까. 의견은 엇갈린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손흥민은 2018~19시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을 이끌었다. 맨시티와 8강전에서 3골을 넣는 등 유럽 전체에 자신을 확실히 알렸다. 올 시즌 팀 결과를 못 내 아쉽지만, 개인 능력을 폭발시킨 시즌으로 봐야 한다. 리그 득점과 어시스트 모두 4위 안에 들었다. 득점왕과 도움왕을 싹쓸이한 케인을 두고 못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어쨌든 토트넘은 케인과 손흥민을 데리고도 12년 만에 6위 밖으로 밀렸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다니엘 레비 회장의 구단 운영 하에서 케인과 손흥민, 호이비에르를 뺀 나머지 선수의 퍼포먼스는 기대 이하였다. 모리뉴 전 감독의 단조로운 패턴 탓에 ‘손-케 듀오’ 화력도 갈수록 한계에 부딪혔다. 수비도 불안했다. 검증 안 된 라이언 메이슨 감독대행이 뒤집기는 불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올 시즌 득점왕(골든부트, 23골)과 도움왕(플레이메이커상, 14도움)을 휩쓴 케인은 라커룸에서 손흥민과 찍은 셀카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도움왕 트로피를 든 손흥민 옆에 ‘이 남자 손흥민’이라고 적고 하트를 붙였다.
‘손-케 듀오’ 해체가 유력한 가운데, 결국 손흥민도 토트넘을 떠날까. 박문성 위원은 “다음이 중요하다.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도 못 나간다. 1992년생으로 29세다. 유럽에서 서른이 넘으면 큰 계약이 쉽지 않다. 토트넘을 떠날 수 있다면, 커리어의 마지막 큰 계약 기회”라고 지적했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계약 기간은 2023년 6월까지이며, 재계약에 아직 사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