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뱃살을 꼬집으며 "살 빼라", "돈 없어서 초과근무 신청하냐"….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네이버 직원을 죽음으로 내몬 임원들의 잔인한 폭언과 과도한 업무 지시의 전말이 드러났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28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달 25일 동료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진행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약 20년 경력의 전문가인 고인은 네이버 지도 중 내비게이션을 담당하며 서버 전체의 아키텍처(시스템 설계)와 경로 탐색 전체를 담당했다. 조직장으로서 조직 관리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개발 실무를 했다.
이번 직장 내 괴롭힘의 중심에는 임원 A가 있다. 부당한 업무 지시와 폭언으로 고인을 사지로 내몰았다.
임원 A는 프로젝트 회의에서 고인의 발표를 공개적으로 무시한 적이 있는데, 바로 5분 뒤 고인과 동일한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제안했다. 본인의 자리 의자에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앉아 고인에게 얘기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조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비상식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회의 중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며 발언자의 목에 걸린 사원증 목줄을 당겼다 놨다 하는 행동을 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조직원의 배를 꼬집으며 "살을 빼지 않으면 조직원들에게 밥을 사라"고 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번 일로 해임당한 임원 A 외 또 다른 가해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획조직의 임원 B는 자신의 조직원이 아닌데도 고인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한 것을 넘어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난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경로 이탈·재탐색' 관련 일을 할 때는 임원 B가 임원 A와 의견 충돌이 발생하자, 여러 명이 있는 사내 메신저에 "배 째기도 정도껏 해야" "이제 와서 딴소리는" 등의 발언을 하며 고인을 압박했다.
밤늦은 시간에도 내비게이션 관련 불만을 고인에게 전달하며 즉각적인 답을 요구했다.
이 밖에도 1시간 회의가 있으면 30분 이상을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험담을 했다. "다 잘라버리고 새로 뽑아서 하겠다" "하는 일에 비해 연봉이 높다"는 말을 반복했다. 4~5개월이 걸리는 일정을 2개월로 단축하라고 강요한 적도 있다.
갑질 피해 직원들은 2019년부터 경영진 면담, 인사팀 문제 제기, 상향평가 반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오히려 신고자만 피해를 보는 결과를 마주했다.
올 초 사내 신고 채널로 한 직원이 임원 B를 신고했지만, 회사와 계약한 외부기관은 조사 결과 '문제없음'으로 결론을 냈다. 신고자는 대기발령 조직으로 이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지난 3월에는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 한성숙 대표가 이와 관련한 보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책임 리더는 더욱 각별하게 선발한다"는 인사 담당 임원의 원론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네이버는 직원들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내고 지난 25일 회사 차원의 징계 조처를 내렸다. 임원 A는 해임, 임원 B는 감봉 3개월 결정이 내려졌다.
임원 A의 취업에 관여하고 갑질 신고를 무시한 최 전 COO(최고운영책임자)는 경고 조치를 받는 데 그쳤지만, 스스로 COO와 비즈 CIC(사내기업) 대표 직책에서 사의를 표했다. 다만 별도 법인인 네이버파이낸셜 대표직, 공익재단 해피빈 대표 등은 계속 맡는다.
공동성명은 "최인혁 네이버 경영 리더를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포함한 모든 계열사 임원 및 대표직에서도 해임할 것을 요구한다"며 "고인은 물론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게 한 임원 B도 해임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정길준 기자 jeong.kilj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