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임신 소식을 이 번호로 받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던 번호라 유품이나 다름없어요."
5G 시대를 맞았지만 최근까지도 많은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각자의 사연이 담긴 '01X(011·016·017·018·019)' 번호를 유지했다. 아쉽게도 이통 3사 모두 2G 장비의 전원을 끄게 되면서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도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이날 2G 서비스를 종료했다. 올해 4월 기준 LG유플러스의 2G 가입자는 15만8534명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불편 접수가 많이 들어오는 상황은 아니다"며 "2G 종료로 얻은 인적·물적 자원을 5G 서비스 개선과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신규 서비스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LTE나 5G로 전환하는 2G 고객에게 '휴대폰 구매 시 최대 30만원 및 2년간 월 이용요금 1만원 할인' '2년간 월 이용요금 70% 할인' '무약정 단말기 12종 무료 제공 및 2년간 이용요금 월 1만원 할인' 중 하나의 혜택을 제공할 방침이다.
2012년 KT에 이어 SK텔레콤이 지난해 7월 2G 서비스를 멈췄다. SK텔레콤의 경우 2G 가입자가 2020년 상반기 40만명대를 기록했다가 지난 4월 12만명대까지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가입자가 적은 LG유플러스는 LTE·5G로의 전환이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01X 번호 이용자들은 2G 서비스 종료와 맞물려 010 번호 통합 정책이 가속하는 것에 맞서고 있다. 관리 효율성 제고, 경제적 가치를 이유로 소비자의 권리를 무력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신대용 010통합반대운동본부 매니저는 본지에 "정부가 당장 앞자리를 030으로 바꾸라고 해서 따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1원도 보상을 바란 적 없다. 이 번호 그대로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2G 서비스를 종료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다"며 "(01X 번호 유지가) 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강제로 통합을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010 번호 통합 정책은 2000년대 초에 탄생했다. 당시 신세기이동통신을 흡수하며 시장지배사업자가 된 SK텔레콤의 2G 시장 영향력이 3G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용으로 쓰던 011이 아닌 010 통합 번호를 부여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010 번호 통합 정책이 번호 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통합이 끝나면 모든 이용자는 전화를 걸 때 앞 3자리 없이 8자리만 눌러도 통화가 가능하게 된다.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성장 서비스의 번호 수요에도 대비할 수 있다.
또 통일될 경우 대량의 번호 자원을 확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당초 이동통신 시장이 형성될 때 통신사별로 앞자리를 다르게 가져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불만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는 작년에 제기한 헌법소원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01X 번호의 영구 운영이 힘들다면 한시적 세대 간 번호이동의 기간이라도 늘려달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청자에 한해 2019년부터 2년간 01X 번호 그대로 3G, LTE,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2G 서비스 종료와 함께 폐지됐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는 해당 정책의 기간을 99년으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길준 기자 jeong.kilj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