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이 4일 일본과 도쿄올림픽 야구 준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모두가 주목하는 한일전이다.
한일전에서 가장 필요한 자세는 '한일전임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 국가대표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한일전을 앞뒀을 때 확실히 팀 분위기가 하나로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전력분석 미팅도 평소보다 비장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선수들도 한 번 볼 자료를 두 번 보게 된다. 다른 경기 전에도 집중하긴 하지만, 뭔가 분위기부터 확실히 다른 거다. 한일전이기도 하고, 일본이 역시 강팀이기도 하니까. 나 역시 괜히 마인드컨트롤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일본도 그냥 '상대 팀 중 하나'라는 마음으로 준결승전에 나서야 한다. 한일전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국가대표팀 경기는 매 게임 중요하다. 또 모두가 알듯 일본 야구는 한국보다 한 수 위 레벨이다. 선수들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이기면 좋고 져도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나섰으면 좋겠다. 그래야 선수 각자가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런 마음가짐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잘 안다. (웃음) 다만 과거 경험을 해봤기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갔을 때, 일본 대표팀엔 다르빗슈 유 같은 메이저리거까지 총출동했다. 정말 화려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 일본이 우리보다 강하다. 져도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인정해버리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고 경기가 잘 풀렸다.
질까 봐 마음이 불편한 건 오히려 일본 쪽이다. 그쪽도 자신들 실력이 한 수 위라는 걸 아니까 '져도 본전'이 아니고 더 부담을 갖는 거다. 한국 선수들이 감독의 작전대로 잘 움직이면서 악착같이 버티면, 일본 선수들이 반대로 더 당황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한국이 일본을 꺾을 때, 실력으로 압도한 경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이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니까 일본이 불안해하다 제풀에 자멸한 경기가 더 많았다. 그러니 우리는 행여 지고 있더라도 최근 경기들처럼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근성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이번 올림픽을 보니 역시 미국과 일본의 전력이 가장 탄탄하다. 투수, 타격, 수비 등 전체적인 짜임새가 훌륭하다. 2일 미국-일본전을 보니 두 팀의 경기력이 거의 비슷하거나 미국 쪽이 조금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강점은 아시아 야구 특유의 세밀함이다. 미국은 그런 점이 부족했다.
연장 승부치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똑같은 10회 무사 1·2루에서 미국은 일본 투수가 강한데도 강공을 선택하다 점수를 못 냈다. 반면 일본은 번트를 잘 대는 선수를 대타로 내서 주자를 진루시키고 결국 결승점을 뽑았다. 이기는 데 필요한 점수를 짜낸 일본이 실력을 믿고 밀어붙인 미국을 이겨버린 거다.
일본 선수 개개인의 이름값은 이전처럼 높지 않은데, 워낙 자국 리그 수준이 높다 보니 나오는 투수마다 대단하다고 느꼈다. 선발 다나카 마사히로의 구위가 예전만 못했을 뿐, 그 뒤에 불펜으로 나온 투수들은 전부 강하더라. 특히 경기 막판에 나온 투수들은 모두 시속 150㎞가 넘는 직구를 던지면서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았다. 미국 타자들이 헛스윙만 연발하는 모습을 보고 확실히 한국보다 투수력이 위에 있다고 느꼈다.
경험상 일본 투수들을 공략하려면 타석에서 빠르게 승부해야 할 것 같다. 보통 시속 150㎞ 이상을 던지는 투수들은 그게 큰 무기니까 직구 위주로 승부한다. 그런데 일본 투수들은 강속구를 일단 숨기고 변화구로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간다. 그러다가 강속구 한번 보여주고 포크볼 하나를 쓱 던져서 (타자를) 잡는 거다. 초반에 슬라이더, 커브 등이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올 때 승부를 빨리 걸어야 승산이 있다. 일단 투스트라이크에 몰리면 타자들도 생각이 많아지고,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 타석을 지켜보고 있는 더그아웃 분위기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해결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
물론 투수만 강한 것도 아니다. 야구진 구성도 좋다. 특히 수비와 주루플레이가 탄탄하고, 한국 대표팀처럼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투입돼야 하는 선수들도 다 있다. 지금 한국 대표팀 분위기가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일본전이 힘든 경기가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한일전에서도 한국 야구대표팀 특유의 응집력과 결속력이 나왔으면 좋겠다. 잘하는 팀들끼리 붙을 때는 실수 하나에 승패가 갈리니, 큰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또 일본도 이스라엘, 미국과 똑같은 팀이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일본이라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고, 벤치의 작전을 잘 수행하면서 우리만의 야구를 하다 보면 분명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