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김형일(37)이 그라운드를 떠난 지 4년 만에 K리그 해설위원으로 돌아왔다.
김형일은 현역 시절 투지 넘치는 중앙수비수였다. 2007년 대전에서 데뷔해 포항, 상주, 전북, 광저우 헝다(중국), 부천 등에서 활약했다. K리그 기록은 통산 216경기 6골. 2018년 로얄 타이 네이비 FC(태국)에 입단한 그는 어깨 탈구 때문에 만 34세에 은퇴했다.
은퇴 이후 축구선수 출신 동생(김준일)과 축구 교실을 운영하던 그는 지난달부터 JTBC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지난 6일 만난 김형일 위원은 "JTBC 해설위원인 (현)영민이 형이 권유했다. 그 전부터 리뷰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두려움은 없었다.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고 했다.
'초보 해설'에게 따르는 비판도 있다. 김형일 위원은 "당연한 거다. 일부러 팬들의 반응을 찾아보진 않았다. 리뷰 프로그램을 처음 할 때는 좌절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해보지 않고 그만두기는 싫었다"고 했다.
김 위원은 "선수 출신이다 보니 패스만 보면 딱 좋은 상황이라는 걸 알아챈다. 그래서 슛을 차기 전부터 '아, 좋아요'란 말이 나오더라. 조금씩 내 것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선수 출신인 (이)주헌이 형이나 (강)성주 같이 해설할 순 없다. 그래도 뭐가 잘못됐는지를 하나하나 되돌아보면서 고치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은 "스튜디오에서 할 때보다 경기장에 가니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뻥 뚫린 곳이라 마음도 편했다"며 "다행히 지난 4경기를 모두 박용식 캐스터와 함께 했다. 그래서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선수로 중계를 볼 때와 중계를 하는 입장은 다르다. 김형일 위원은 "선수일 때 중계를 보면 난 수비수니까 '저 선수가 저기 주겠지, 패스를 하겠지, 공격수가 차겠지. 접으면 어떻게 막을까'를 생각했다. 이제는 이후 상황에 대한 전개를 바로 바로 이야기해야 하니까 힘든 것 같다"고 했다.
해설위원은 선수들에게 날 선 평가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김 위원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도 실수를 해봤기 때문에 찍어서 얘기하기가 힘들긴 하다. 그래도 아직 '왜 그렇게 말했냐'고 연락 온 후배는 없었다. 대신 칭찬한 사람들은 연락이 오더라"며 웃었다.
부평고 2학년때까지 공격수였던 김형일은 뒤늦게 수비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큰 체격에 투쟁적인 수비로 프로에서 대성할 수 있었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 덕분에 '글래디에이터(로마 검투사)'란 별명을 얻었다.
"그 별명을 정말 좋아한다"고 한 김 위원은 "난 오늘만 보며 축구를 했다. '오늘 잘 해야 내일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간절하고, 팬들도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거칠게 플레이했지만 위험한 지역에선 절대 파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까지 퇴장을 당한 건 딱 한 번"이라고 했다.
김형일 위원은 아직도 국가대표팀에 처음 갔을 때가 생생하다. "하루는 훈련 뒤 파리아스 당시 포항 감독이 나를 불렀다. (조)용형이 형 대체 선수였다. (이)영표 형, (박)지성이 형, (차)두리 형 같은 선수들이 있던 대표팀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내가 뛴다면 아마 대표팀에 못 갈 것이다. 요즘은 수비는 기본이고, 공도 잘 차는 김민재 같은 수비수를 원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팀에 많이 소집되고도 경기에 거의 못 뛰었지만(A매치 2경기 출전), 전혀 아쉽지 않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갔고, 프로에서 우승(챔피언스리그 2회, K리그 2회)도 해봤다. 난 행복한 선수였다"고 했다.
만약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을까. 김형일 위원은 "전북에서 뛴 2016년 마지막 경기에서 FC서울과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다. 그런데 박주영에게 골을 주고 패했다. 후반 추가시간 (신)형민이가 올려준 크로스를 내가 넣었다면 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 그 때가 정말 아쉽다"고 했다.
태국에서 돌아온 그는 조용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팀을 이미 떠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은퇴식도 하지 못했다. 올해 5월 포항에서 10명의 선수를 불렀을 때 처음으로 은퇴 관련 행사에 참여했다.
김형일 위원은 "습관성 탈구 때문에 은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쉽진 않았다. '은퇴식을 못했는데 아쉽지 않느냐'고 물어본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아니었다. 사실 포항에서 은퇴식을 열 때도 다 같이 했으니까 간 거였다. 오랜만에 동료들을 스틸야드에서 보는 게 좋아 갔지, 혼자서 하라고 했으면 고사했을 것 같다"고 했다.
은퇴 이후 그는 일반인들을 지도하기도 했고, C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해설위원으로 성장한 뒤 프로팀 지도자를 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김형일 위원은 "처음엔 지도자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다"며 "아직는 1년차 해설위원이다. 모든 시청자들을 만족시키진 못하더라도 선수들이 '아, 저건 형일이 형 말이 맞아'라고 느끼는 해설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