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지난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0승을 달성했다. 골프 불모지에서 자란 구옥희는 맨땅에서 헤딩하듯 LPGA 투어에 진출, 1988년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박세리는 ‘맨발의 투혼’으로 경제 위기를 겪던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2013년 박인비는 골프사에 남을 메이저 3연승을 거뒀다. 2021년 고진영은 혼자 한국의 197~200승을 따냈다. 한국 여성 골퍼들의 노고와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그들은 한국 골프는 물론, 전 세계 여자골프의 판도를 바꿨다. 한국 최고의 수출품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최근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 올해 한국 선수들은 LPGA 일반 대회 6승에 그쳤고, 메이저 대회와 올림픽에서는 빈손이었다. 2019년 15승,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7승(메이저 3승)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완연한 하락세다.
남은 두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우하향 그래프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전망도 밝지 않다. 올해 LPGA 투어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는 3명뿐이다. 박인비는 은퇴를 생각 중이고, 눈에 띄는 젊은 피는 보이지 않는다. 7년 만에 한국 선수가 LPGA 신인왕을 타지 못했다.
한국의 유망주들은 LPGA 투어에 시큰둥하다. 이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의 도전정신이 줄었다는 비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가 변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정상급 여자 선수들은 당연히 LPGA에 갔다. 요즘은 개인의 취향이 중요하고 즐기면서 운동하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이유다. 돈은 프로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과거 여성 프로들이 LPGA 투어 진출을 갈망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 투어 총상금이 국내 투어의 10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면 부자가 될 기회를 얻었다.
올해 KLPGA 투어 31개 대회 총상금은 280억원이다. LPGA 투어 상금의 3분의 1 정도다. LPGA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세금과 경비를 빼면 수입이 국내 투어에서 뛰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미국에 갔다가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선수들이 국내 투어에 머무는 게 반드시 나쁘진 않다. 한국 선수들은 LPGA 투어에서 200승을 거둠으로써 충분히 실력을 증명했다고 본다. 300승, 400승도 좋지만 이제 서서히 국내 투어를 세계화할 때가 됐다. 세계랭킹 100위 이내에 한국 선수가 31명이니, 여전히 한국이 여자골프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테슬라보다 현대차가 잘 되는 것이 한국인들에 좋다. 현대차가 일자리를 한국에 많이 만든다. 냉정히 보면 LPGA 투어는 다른 나라의 스포츠 단체이고, KLPGA가 한국의 투어다.
물론 문을 닫아놓으면 안 된다. 치열한 경쟁을 위해 외국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코스도 가능한 한 길고 어렵게 만들어서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 올림픽, 메이저대회, 인터내셔널 크라운 등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한국의 여자 투어는 2류로 떨어지고,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제 버블이 절정이었던 1980년대 남녀 투어 상금이 미국 투어에 육박했다. 선수들이 굳이 미국에 갈 필요가 없었다. 이후 일본 내 경쟁이 느슨해졌고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 2019년 시부노 히나코는 무려 42년 만에 고국에 메이저 우승컵을 안겨줬다. 일본 골프의 ‘잃어버린 40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