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프로축구 루빈 카잔 황인범(25)이 2일 전화 인터뷰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는 지난 주말 CSKA 모스크바전 홍보 메인 모델로 나섰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오겜’ 속 참가자들의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등 번호가 6번이라 번호표 ‘006’을 달았다.
경기에서 1-0 승리를 지휘한 황인범은 “카잔 원정 유니폼이 초록색인데, 초록색 팀이 이겼다. ‘오겜’이 러시아에서도 난리다. 나도 러시아 동료가 추천해서 봤다”고 했다. 이어 “팀이 5경기째 승리가 없어 감독님이 ‘승리를 위해 죽도록 뛰자’고 했다”고 전했다.
황인범은 러시안 프리미어리그에서 2시즌째 뛰고 있다. 키 177㎝인 황인범은 “이곳은 피 터지게 싸우는 ‘노 빠꾸’ 리그다. 압박도 강하다. 덩치 큰 선수들에게 밀릴 수 있기에 볼 컨트롤부터 생각한다. 4-3-3 포메이션에서 중앙과 홀딩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고 했다.
황인범은 ‘오겜’처럼 치열한 러시아 생존게임에서 살아 남았다. 카잔 구단 7~8월의 선수에도 선정됐다.
그래서일까. 황인범은 지난달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 4차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시리아전에서 왼발 중거리 슛으로 골을 터트렸다. 황인범은 “중거리 슛은 오른발보다 왼발이 더 자신감이 있다. 2015년 오른발 피로 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전력 질주하다가 오른발 슛을 쏘려면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다. 왼발로 골대 안으로 강하게 찬다고 생각하고 때린다”고 했다.
이란전에서는 탈압박하며 패스를 내줘 선제골의 출발점 역할을 했다. 황인범은 “아버지가 ‘국가대표라면 아무리 압박이 강해도 무의미하게 걷어내면 안된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압박에서 벗어나는 터치가 됐고, (이)재성이 형의 멋진 패스를, (손)흥민이 형이 마무리해줬다”고 했다.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은 2018년 한국을 맡은 뒤 황인범이 부진해도 절대적으로 중용한다. 그래서 황인범은 ‘벤투 황태자’라 불린다. 황인범은 지난달 시리아전을 앞두고 “불편한 분들에게 증명하겠다”고 했고, 결국 ‘증명’해냈다. 황인범은 “황태자란 표현이 제게는 좋지 않은 쪽으로 붙었지만, 좋은 의미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A매치 2연전 후 황인범에게 ‘기성용(서울, 2019년 대표팀 은퇴)의 향기가 난다’는 찬사도 쏟아졌다. 황인범은 “성용이 형이 SNS 쪽지로 ‘에이스잖아’라고 보내줬다. 성용이 형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는 몇십년이 지나도 절대 안 나올 거다. 나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대표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황인범은 1996년생 황희찬(울버햄튼), 김민재(페네르바체), 나상호(서울)와 함께 ‘96 라인’이라 불린다. 황인범은 “넷이 카카오톡 단체방이 있다. 장난도 치고 서로에게 자극이 된다”고 했다. 11일 아랍에미리트, 16일 이라크와 최종예선을 앞둔 황인범은 “당연히 2승을 목표로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프로축구 대전 출신 황인범은 작년에 대전시에 코로나19 성금 5000만원을 기부했고, 최근 대전 홈경기에 축구 꿈나무 관람을 지원했다. 황인범은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온 대전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다. 러시아에서도 대전 경기를 챙겨보며 1부 승격을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황인범은 지난 7월 웨딩 화보를 공개하며 결혼 소식을 알렸다. 그는 “올겨울에 결혼식을 계획하고 있다. 여자친구를 2016년부터 5년간 만났다. 이 사람이랑 평생 살아도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