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올 시즌 내내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탓에 '에이징 커브'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일부 팬은 그의 부진을 비난했다. 하지만 팀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진가를 발휘했다. 결국 마지막에 웃었다.
박경수는 지난 10월 31일 열린 삼성과의 페넌트레이스 1위 결정전에서 KT의 승리를 굳히는 호수비를 보여줬다. 1-0, 살얼음판 리드 속에 맞이한 9회 말. 투수 김재윤이 선두 타자 구자욱에게 우측 안타성 타구를 허용했지만, 2루수로 나선 그가 몸을 날려 공을 잡아냈다. 불안정한 자세로 정확한 송구까지 해냈다.
KT 1루수 강백호는 송구를 잡은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선배의 호수비를 기뻐했다. KT는 창단 첫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박경수는 KT가 1군에 진입한 첫 시즌(2015)부터 팀을 지켰다. '만년 꼴찌팀'으로 평가받던 KT의 성장을 이끌었다. 우승 직후 박경수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데뷔 19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맛봤다. 박경수는 "믿기지 않는다. 야구 인생에 있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라며 감격했다.
박경수는 올 시즌 9월까지 출전한 94경기에서 타율 0.201·28타점에 그쳤다. 2015시즌 이후 가장 적은 수비 이닝(522이닝)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초반에는 허리 부상으로 이탈했다. 9월 중순에는 우측 햄스트링 손상으로 다시 한번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지난 시즌 막판에도 같은 부위 통증으로 이탈했다.
박경수는 자책했다. 좋은 활약을 해도 "그동안 안 좋았던 경기력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소셜 미디어(SNS)로 비난하는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그는 "결과를 못 내면 욕을 먹는 게 당연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KT가 주춤했던 10월부터 박경수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10월 3일 SSG전은 6-6 동점이었던 9회 초 결승타를 쳤고, 4일 NC전에는 3-4로 뒤진 9회 말 동점 적시타를 쳤다. 두 경기 모두 내야수의 실책으로 역전을 허용한 상황에서 안타를 치며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15일 KIA전에서는 7-7 동점이었던 8·9회 안타성 타구 2개를 범타로 만들었다.
박경수는 다리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급적 2루 수비를 소화하려고 했다. 10월 28일 NC전에서는 왼쪽 허벅지 통증까지 생겼다. 하지만 SSG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선발 2루수로 나섰다. 박경수는 1위 결정전에서도 마법 같은 다이빙 캐치로 팀 우승에 기여했다.
KT 선수들은 1위 결정전이 끝난 뒤 박경수의 호수비 장면을 다시 보며 우승을 만끽했다. 박경수는 "이 나이에 개인 성적까지 좋으면 좋겠지만, 나에겐 일단 팀 성적이 우선이다. 몸과 정신을 가다듬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