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우울증 환자가 인지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에 이르면 보험금 지급 대상이라는 판단을 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19일 보험연구원의 간행물 '보험법리뷰' 14호에 실린 '2021년 보험 관련 중요 판례 분석(I)' 보고서에 따르면, 대법원은 올해 2월 우울증 환자의 자살 때 보험사의 면책을 제한하고 가입자(피보험자)에게 유리하게 판시했다.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한 보험 가입자(피보험자)는 사망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이 재판의 원고는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초등학교 교사 A 씨의 유족(아버지)으로, 딸이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했다고 주장하며 공무원 단체보험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A 씨가 가입한 보험의 약관은 자살을 보험사의 면책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또는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는 면책에서 제외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종전에 법원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했다.
극도의 흥분이나 불안으로 정신적 공황 상태 또는 몸을 가눌 수 없는 만취 상태에서 투신하거나, 정신질환에 따른 망상으로 자해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이 사건 역시 1심과 항소심에서 A 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사망 당일 행적, 극단 선택의 시기·장소·방법 등을 종합해볼 때 A 씨는 자기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끊어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것으로 보이므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해 원고의 요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치의가 A 씨의 증상이 주요 우울장애(우울증)에 해당하고 사망 당시 인지 왜곡 증세를 보였다고 진단한 점, 주요 우울장애와 자살의 관련성에 대해 의학적 판단 기준이 확립된 점, 공무원 공단을 상대로 한 유족보상금 청구 소송에서 A 씨가 우울증으로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떨어져 극단 선택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한 점을 근거로 A 씨의 자살이 보험사의 면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황현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판례와 최근 유사 판례는 우울증 심화로 정신적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경우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해당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