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싸이월드가 조만간 부활한다는 소식에 30·40세대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메타버스(확장 가상현실)를 입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
싸이월드의 '미니룸'은 2차원의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부캐(보조 캐릭터)인 '미니미'로 사람들과 만나는 소통의 장이 된다. 직접 만든 아이템을 팔아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놀랍게도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오피스 소프트웨어 명가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가 있다. B2B(기업 간 거래) 전문 기업이 어쩌다 싸이월드와 손잡고 메타버스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됐을까. 지난달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컴타운에서 만난 김병기(42) 한컴 서비스전략실장은 이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혁신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니미·미니룸 아이템, NFT로 사고 판다
한컴은 지난달 17일 메타버스 플랫폼 '싸이월드 한컴타운'(이하 한컴타운)의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대 10명을 초대할 수 있는 '마이룸'과 최대 500명이 접속해 대규모 행사를 열 수 있는 '스퀘어'로 구성했다.
공개 당일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싸이월드 신규 웹·앱이 출시하면 미니룸과 연동해 정식으로 서비스할 계획이다.
김병기 실장은 "아바타와 공간을 개성 있게 꾸밀 수 있는 아이템·템플릿·음원을 지원하고, NFT(대체불가토큰)를 발행해 디지털 자산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일명 돈 버는 게임인 P2E(플레이 투 언) 게임처럼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이용자를 위한 저작도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 "게임의 경우 앱을 한컴타운 안에서 다운로드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퍼블리싱 수수료 매출을 올리는 방향도 구상 중이다"고 덧붙였다.
프리미엄 공간 대여 서비스도 출시한다. 브랜드가 반영구적으로 소유하는 스퀘어를 마케팅 채널로 활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이미 IBK기업은행과 같은 굵직한 기업들이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김 실장은 "금융권은 점포를 줄여가면서도 고객들에게 심리스(끊김 없는)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은 니즈가 있다"며 "입점 요청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신제품 홍보를 비롯해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는 단계다"고 말했다.
당초 한컴타운은 2.5D 그래픽의 메타버스 서비스 '게더타운'을 벤치마킹해 기업 특화형으로 나올 예정이었다. 간결한 UI(사용자 인터페이스)에 한컴의 무기인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붙여 원격근무 환경을 지원하려 했다.
그런데 싸이월드와 손잡게 되면서 정체성이 확 바뀌었다. 김연수 한컴 대표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싸이월드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11월부터 개발을 본격화해 6~7주 만에 서비스를 내놨다.
김 실장은 "주요 타깃은 20~40대다. 30대와 40대는 메타버스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익숙한 서비스 안에 녹이면 네이버의 '제페토'처럼 빠르게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컴타운은 싸이월드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 서비스를 지향한다. 향후 파트너십을 맺는 다양한 브랜드 명칭이 앞에 붙을 것이라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재미보다 소통…"메타버스, 언젠가 터진다"
이미 국내 메타버스 시장에서 제페토는 글로벌 가입자 2억명 이상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1위 MNO(이동통신) 사업자 SK텔레콤도 '이프랜드'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한컴은 이들과 차별화한 매력으로 영토를 넓힌다.
김병기 실장은 "제페토와 이프랜드는 '재미'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한컴타운은 이용자 간 '소통'에 더 치중돼 있다"며 "이를테면 조별과제 같은 것을 할 때 'OO 방으로 모여'라고 전달하면 비대면 트렌드에 맞춘 모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시간 양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과거 싸이월드는 미니룸 주인이 온라인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일촌평을 남기거나 방명록을 작성해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용자의 접속상태를 확인하고 곧바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제공 중인 음성·영상 송출 기능으로 1인 방송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인기 아이돌 BTS의 미니룸을 가정하면, 수많은 이용자가 별다른 활동 없이 장시간 머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최대 수백억의 트래픽 비용이 나갈 수 있어 하루에 제한시간을 두거나 시간별로 과금하는 모델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둔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이 B2B 사업을 주로 전개해온 한컴에게는 다소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회사는 10년 가까이 SK 계열사에서 신사업에 매진한 플랫폼 전문가 김 실장을 영입해 선봉에 세웠다.
전자과를 졸업한 김 실장은 SK텔레콤 입사 후 모바일 네트워크 운영 업무를 맡다 SK플래닛으로 자원해서 이동했다. 안정적인 근무환경보다 플랫폼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더 크게 본 것이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로 통합된 미디어 서비스 '옥수수'를 론칭하고, 국산 앱마켓 '원스토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둘 다 SK의 신설투자회사 SK스퀘어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미래 먹거리 사업이다.
이렇게 남다른 인사이트를 보유한 김 실장에게도 고민은 있다. 메타버스가 허상이라는 업계 일부의 비관적인 시선이 그것이다.
김 실장은 "PC의 키보드, 마우스를 거쳐 스마트폰 터치로 인터페이스는 혁신했다. 메타버스는 무엇을 활용해야 하는지가 과제다"며 "VR(가상현실) 기기가 아직 무겁고 불편하지만, 허들 하나만 넘으면 분명히 메타버스는 터질 것이다. 거품이라고 해도 준비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한컴은 메타버스로 고객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 기업용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해 일상에 녹아드는 서비스를 지속해서 선보일 방침이다. 해외 진출도 당연히 염두에 두고 있다.
김병기 실장은 "한컴은 B2B·B2G(정부 거래) 서비스로 성장해온 회사다. '한글'은 많은 효율을 제공했지만 즐거움은 주지 못했다"며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에서 개개인에게 사랑받는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