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계가 새해 벽두부터 쓴맛을 봤다. 지난해 내수 시장 성적표를 받아든 가운데 반도체 수급난 여파로 일제히 뒷걸음질을 쳤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기간 수입차 판매량은 오히려 늘어 대조를 이뤘다. 문제는 올해 완성차 업계의 전망이 더 어둡다는 데 있다. 반도체 여파가 여전히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입차 업체는 또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국내 완성차 일제히 '후진기어'
1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완성차 5개사(현대차·기아·한국GM·르노삼성·쌍용차)는 내수 시장에서 전년 대비 10.8% 하락한 143만3605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문제는 누가 하나 성장세를 기록한 곳이 없다는 데 있다.
브랜드별로 살펴보면 현대차는 2021년 내수시장서 총 72만6838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한 수치다.
현대차는 투싼, 아이오닉 5, 캐스퍼 등 경쟁력 있는 신차를 시장에 발 빠르게 투입하며 인기몰이에 나섰지만,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에 발목을 잡혔다. 현대차 인기 신차들의 경우 올해도 수개월 이상 대기가 예고된 상황이다.
사명서 ‘자동차’를 떼고 새롭게 출발한 기아 역시 첫해 내수 시장에서 뒷걸음질을 쳤다. 53만5016대로 2020년보다 3.1% 감소했다. K8, EV6, 스포티지 등 신차는 물론 카니발과 쏘렌토 등 스테디셀러들의 인기가 높았지만,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지연이 뼈 아팠다.
후발주자 3사의 내수 실적은 더욱 초라하다.
르노삼성차의 2021년 내수 판매실적은 6만1096대로 전년 대비 36.3% 하락했다. 주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6가 3만7747대(19.4%↓)를 책임졌고, XM3가 1만6535대(-51.5%) 인도됐다. 전기차 르노 조에가 774대(303.1%↑)로 깜짝 반등하며 힘을 보탰지만, 하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쌍용차는 지난해 내수 시장에 5만6363대를 인도했다. 전년 동기 대비 35.9% 감소한 실적이다. 무엇보다 모든 제품이 두 자릿수대 감소세를 기록했다. 쌍용차 역시 차량용 반도체 등 공급선 문제로 공급 차질을 겪었다. 하지만 렉스턴 스포츠&칸의 계약이 몰리면서 지난달 전 라인(1, 3라인) 모두 특근 및 잔업을 시행하는 등 생산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국GM의 2021년 내수판매 대수는 총 5만4292대로 2020년 대비 34.6% 감소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신차 부족이 겹치며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주력 차종인 경차 스파크가 1만7975대(37.9%↓), 소형 SUV 트레일블레이저가 1만8286대(12.5%↓)씩 출고됐지만, 하락세가 완연했다.
수입차 판매는 '역대 최다'
국내 완성차 업계가 일제히 주춤한 사이 수입차 판매량은 오히려 늘어 눈길을 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수입차 판매량은 27만6146대로 전년(27만4859대) 대비 0.5%가량 늘면서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테슬라가 포함된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차 판매량은 29만6887대로 전년(28만4961) 대비 4.2% 늘어난다.
특히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수입차 판매량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1억원이 넘는 고가 차량은 총 6만5132대가 팔려 전체 수입차 중에서 23.6%를 차지했다.
덩달아 수입차 시장에서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1만대 클럽'도 늘어났다. 먼저 지프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지프는 국내에 여러 한정판 모델을 내놓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그 결과, 지난해 판매량 1만대를 넘긴 브랜드는 메르세데스 벤츠(7만6152대), BMW(6만5669대), 아우디(2만5615대), 볼보(1만5053대), 폭스바겐(1만4364대), 미니(1만1148대), 지프(1만449대), 테슬라(1만7828대) 등 총 8개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국내 완성차 업계가 생산 차질을 겪으면서 수입차가 많이 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과거 수입차의 단점으로 인도 기간이 긴 것이 꼽혔는데 최근 들어반도체난으로국내차도 인도 기간이 길어졌다”며 “여기에 수입차 업체들이 AS에도 투자를 많이 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 크게 성장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새해도 희비 지속될 것"
새해에도 국산차와수입차 간의 희비는 엇갈릴 전망이다. 코로나19발 소비 양극화 현상과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규제 역차별 등 국내외 요인이 맞물리면서 이런 흐름을 심화시킬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은 총 174만대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한 지난해(173만5000대)와 비교해 0.3% 증가에 그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만 해도 190만3000대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국산차의 고전이 두드러졌다. 올해에도 142만대로 0.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수입차는 내년 32만대로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됐다.
업계는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장 국내 완성차 업체 중 르노삼성·쌍용차·한국GM 등의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데다,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현대차·기아가 반도체 부품 부족 여파로 수십만 대 이상의 생산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가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 온라인 판매 등에 오랜 기간 제한을 받는 등 역차별 규제를 받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 없이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온 수입차 업계는 각종 사후 서비스를 무기로 중고차 가격 하락을 최소화해 신차 판매 때도 프리미엄 효과로 활용해 왔다”면서 “반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각종 규제에 막혀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은 물론, 온라인 판매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수입차와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