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코피를 많이 흘렸던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얼음 위를 달리는 메달리스트가 됐다. '허약했던 소년'은 '올림픽에 강한 사나이'로 성장했다.
차민규(29·의정부시청)는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34초39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땄다. 2018년 평창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이 종목 올림픽 은메달을 따냈다.
20년 전 그는 허약한 어린이였다.
초등학생 차민규는 유독 코피를 많이 쏟았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더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동네 아이스링크으로 데려가 스케이팅을 배우도록 권유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주말 특강반 수업을 다닌 차민규는 이내 스케이트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차민규는 본격적으로 스케이트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이때는 부모는 아들을 걱정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몸이 약했던 소년은 쇼트트랙을 시작한 뒤 점점 튼튼해졌다. 초등학교 시절 주니어 쇼트트랙 상위권을 휩쓸었다. 한국체대에 진학한 차민규는 몸싸움이 싫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차민규의 주종목인 500m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최단거리 종목이다. 폭발적인 스피드가 필요하다. 가장 짧은 거리를 가장 빠르게 달리기 위한 그의 여정은 길고 험난했다.
2014년 소치 올림픽 국내 선발전을 앞두고 그는 발목 인대를 다쳤다. 재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의사는 "운동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며 선수 생명을 걱정했다. 그래도 차민규는 포기하지 않고 "국가대표는 한 번 해야 하지 않겠냐"며 힘든 재활치료 과정을 참고 버텼다.
차민규는 올림픽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4년 전 평창 대회에서 깜짝 은메달을 땄다. 평창 올림픽의 메달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던 그는 남자 500m 경기에서 34초42를 기록했다. 금메달을 딴 노르웨이의 호바르 로렌첸에 불과 0.01초 뒤졌다.
경기 전 "나도 일 한 번 내보고 싶다"던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차민규는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어릴 때 약하더라도 커서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 이후 차민규는 긴 슬럼프에 빠졌다.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 4개 대회에서 부진했다. 8차례 레이스 중 1부리그 10위 안에 든 것은 단 한 차례, 2차 대회 1차 레이스(7위)뿐이었다. 나머지는 10위권밖에 맴돌며 디비전 B(2부리그)로 밀려났다. 베이징 올림픽 메달권 후보로 꼽히지 못한 건 당연했다.
막상 뚜껑을 열자 4년 전과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차민규는 보란 듯 은메달을 획득했다. 강한 의지로 부상을 극복해냈다. 또 기술적으로 장비 문제를 해결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차민규는 다른 선수보다 장비에 예민한 편이다. 평창 올림픽 당시 담당 코치로 활동한 장철 코치의 도움을 받아 스케이트 날을 정비했다. 그는 "장비에 문제가 있다는 걸 뒤늦게 잡아냈다. (이를 일찍 바로잡아) 완벽하게 준비했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차민규는 강심장이다. 앞서 달린 가오팅위(중국)가 올림픽 신기록(34초32)을 세워 뒷조 선수들이 심리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메달 후보로 꼽히던 선수들은 가오팅위의 기록을 의식한 듯 무리하게 주행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차민규는 침착하게 자신의 레이스를 펼쳤다.
차민규는 '깜짝 은메달'이라는 평가에 대해 다소 아쉬워했다. 그는 "평창 올림픽 때는 그런 말을 들었다. 이번에도 은메달을 또 획득했으니 '깜짝 2위'는 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고 했다. 이어 큰 대회에 강한 이유를 묻는 말에 "딱히 다른 비결은 없다. 노력했고 더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성적이 안 나왔지만 고생하고 노력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