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원(32)은 유니폼을 바꿔 입고 새 각오를 전하는 인터뷰까지 소화했다. 그러나 경기에 뛸 수 없었다. 선수를 주고받은 두 팀이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한 행보를 보여줬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는 서울 고척스카이돔 맞대결을 앞둔 24일 오전 11시께 트레이드 소식을 발표했다. KIA는 내야수 김태진과 현금 10억원, 2023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키움에 내주면서 포수 박동원을 영입했다.
KIA는 "박동원은 공·수 기량이 검증된 포수다. 팀 장타력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선수"라고 했다. 키움도 "박동원이 더 많은 출전 기회가 있는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김태진은 내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키움은 상위 라운드 지명권을 확보했다. 반면 포스트시즌 진출을 목표로 세운 KIA는 취약 포지션이었던 안방을 보강해 윈-나우(win-now)를 노릴 수 있게 됐다. KBO리그에 활력을 더할 수 있는 트레이드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트레이드 발표 1시간 17분 뒤 KBO 사무국이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다. 각 매체에 "오늘 신청된 키움-KIA 사이 트레이드 요청은 세부 내용을 신중히 검토 후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알린 것이다.
키움은 과거 주축 선수를 트레이드하며 이면 계약을 진행, 공개된 금액보다 많은 돈을 챙긴 바 있다. 2017년 5월 이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KBO는 이후 '이면 양수도계약의 금지' 관련 조항을 강화하는 규약을 만들었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전력이 있는 키움 구단이 다시 현금이 포함된 트레이드를 추진하자 KBO가 제동을 걸었다. '투명한 리그 운영'을 강조한 허구연 신임 KBO 총재의 의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KBO 관계자는 "꼭 키움이 진행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현금과 지명권이 포함된 트레이드이기 때문에 더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그게 절차"라고 밝혔다. 이어 "두 팀 모두 보도자료에 'KBO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이게 트레이드 승인이 이미 나온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고, 취재진도 계속 물어봐서 상황을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BO 규약 10장 제90조는 '선수 계약이 양도된 선수는 총재가 선수 계약의 양도를 공시한 날로부터 양수 구단을 위한 경기, 훈련 등 일체의 참가활동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허구연 총재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박동원은 24일 기준으로는 여전히 키움 선수라는 얘기다.
박동원은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고척돔 내 라커룸에서 개인 사물을 정리했다. 그리고 KIA 유니폼을 입고 취재진 앞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규약상 KIA 선수로 경기에는 뛸 수 없었다. 이에 대해 KIA 관계자는 "트레이드 승인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KBO에 문의,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원래 박동원은 24일 1군에 등록할 계획이 없었다"고 했다.
키움은 트레이드 성사 발표 후 박동원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박동원은 사실상 24일 하루 동안 KIA 선수도 키움 선수도 아니었다. 이로 인해 등록일수 하루를 손해 봤다. 박동원은 올 시즌 1군에 145일 이상 등록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이번 트레이드가 승인되지 않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KBO가) 이 트레이드를 승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원칙대로 다 했다. 금액을 숨기거나 부정한 행동을 했다면 제재를 받겠지만, 전혀 그런 게 없다"고 주장했다. KIA 관계자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와 별개로 양 팀이 통상적인 행정 절차를 가볍게 보고 성급하게 움직인 건 짚고 넘어갈 문제다. 야구 관계자 A는 "트레이드는 KBO의 승인을 받은 뒤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다. 급한 상황이라도 승인이 나온 뒤 발표하도록 준비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양 팀 모두 트레이드가 당연히 바로 승인될 것으로 본 게 아닐까.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건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고척 경기에선 KIA가 14-2 대승을 거뒀다. KIA 선발 투수 한승혁이 7이닝 동안 7피안타 2실점 호투로 2018년 10월 10일 한화 이글스전 이후 1292일 만에 승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