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티 강국인 한국이 맞춤형 화장품 시대를 활짝 열었다. 맞춤형 화장품이란 개인의 피부 상태나 취향에 맞춰 원료를 배합해 만드는 제품으로 화장품 업계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아모레퍼시픽(아모레)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맞춤형 화장품 및 서비스를 선보인 대표 K뷰티 기업이다. 아모레는 지난 21일 맞춤형 쿠션·파운데이션 제조 서비스 '비스포크 네오'를 출시했다. 본지가 명동 라네즈 쇼룸을 찾아 해당 서비스를 직접 이용해보고, 맞춤형 화장품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아직도 18호·21호·23호 쓰니?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명동 라네즈 쇼룸에 설치된 '스킨톤 파인더'에 얼굴을 가져다 대자 화면에 '17W2'란 글자가 떠올랐다. "고객님은 밝은 웜톤(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조)이세요. 평소 피부톤에 딱 맞는 색을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조금 더 화사한 색을 선호하시나요?"
나만의 피부색이 선택되자 컨설턴트가 스킨톤 파인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쇼룸 한편에 설치된 로봇이 바쁘게 팔을 움직였다. 원하는 색의 제품을 현장에서 바로 제조하는 아모레만의 특허 출원 제조 로봇이다.
"실제 네오 쿠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기계)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컨설턴트의 설명이 뒤따랐다. 약 8분의 시간이 지나자 그토록 찾았던 '나만의 색'이 담긴 네오 쿠션이 완성됐다. 피부색과 사실상 동일한데, 원하는 톤 보정이 이뤄져 흔히 말하는 '찰떡 쿠션'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아모레의 비스포크 네오는 고객의 피부톤을 측정한 후 1대 1컬러 컨설팅을 통해 최적화된 쿠션·파운데이션을 제조해주는 서비스다. 총 150가지 컬러로 톤 선택의 폭도 5가지나 된다. 디테일한 호수 조절이 가능해서 사실상 모든 인종의 피부색에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라네즈 쇼룸 측의 설명이다.
이날 비스포크네오 서비스를 받은 소비자 A 씨는 "10년 넘게 화장을 해 왔지만 내 피부색에 잘 맞는 제품을 찾지 못해서 '쿠션 유목민'으로 지냈다"며 "18호·21호·23호 등 세 가지 색에 내 얼굴을 맞춰왔던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곳에서는 나만의 색을 찾고 가장 이상적인 컬러의 쿠션과 파운데이션을 만들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아모레는 지난달 29일부터 온라인 비스포크 네오 서비스도 오픈했다. 라네즈 쇼룸에서 서비스를 체험한 뒤 자신만에게 가장 잘 맞는 컬러를 알아뒀다가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쇼룸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다. 방문이 어려울 경우 라네즈 공식 홈페이지에 마련된 페이지에 기존에 사용하던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 정보를 입력하면 가장 잘 맞는 비스포크 네오 색상을 자동으로 추천해준다.
조제관리사인 장지연 라네즈 쇼룸 컨설턴트는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맞춤형 화장품을 선보인 이후 7년째 고객에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여 온 커스터마이징 맛집이자 장인"이라며 "어떠한 피부색이든 가장 완벽하게 맞는 색의 파운데이션과 쿠션팩트를 만들어드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1일 시작한 비스포크 네오 서비스는 사전예약제로 개인당 약 3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100여 명의 고객이 몰렸다는 것이 아모레의 설명이다.
맞춤형 화장품은 아모레가 집중하는 분야이자 미래 먹거리다. 아모레는 2016년부터 라네즈를 통해 국내 최초의 맞춤형 서비스인 '마이 투톤립바'와 '마이 워터뱅크크림' 등 지속적인 맞춤형 서비스를 출시해왔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디지털 기술을 통해 맞춤형과 비대면 솔루션 등 미래 성장 기반을 구축이 시급하다"며 "디지털 기술로 개개인에 맞춘 최적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는 맞춤형 화장품이 '대세'
글로벌 화장품 업계는 맞춤형 화장품이 미래 먹거리라고 판단하고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를 해 왔다.
글로벌 뷰티 업계 1위 로레알 그룹(이하 로레알)은 2018년 인수한 캐나다의 증강현실 및 안면인식 기술업체인 '모디페이스'를 인수한 뒤, 인공지능(AI) 기반 피부 진단 솔루션을 개발했다. 로레알 연구혁신 부서에서 수집한 1만5000개의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16가지 종류의 피부 문제를 분석해 고객에게 맞춤형 제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로레알은 2020년 맞춤형 화장품 즉석 제조 디바이스인 '페르소'를 선보인 뒤 대중화에도 착수했다.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2017년부터 미국의 AI 관련 벤처기업 '지아란'과 미국의 화장품 벤처기업인 '매치코'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맞춤형 화장품 연구 개발에 투자를 해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 초 발간한 '맞춤형 화장품 세계 시장 동향 조사·분석 자료집'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글로벌 맞춤형 화장품 비즈니스 규모는 436억6000만 달러(약 53조609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 기준으로는 11억4352만 달러(약 1조4041억 원) 수준이다.
식약처는 리포트에서 "해외에서 맞춤형 화장품은 소비자의 맞춤형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공하는 화장품과 관련 서비스를 의미한다"면서 "시대에 따라 소비자의 니즈와 제품의 제공 방식이 변하면서 모습을 달리하고 범위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약처는 지난 2020년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과 함께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 제도를 허용했다. 과거에는 화장품이 제조공장에서만 이뤄져야 했지만, 이제는 매장에서 바로 제조·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판로가 확장됐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기업 중에서는 아모레가 맞춤형 화장품 개발 및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이라며 "뷰티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마다 미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과 특징이 있어야 한다. 초개 인화 시대에 대처하는 맞춤형 화장품 시대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