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무대를 누볐던 모든 순간 성실했던 투수. 안영명(38)이 은퇴식을 갖고 20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
베테랑 불펜투수 안영명은 지난 5월 13일 키움 히어로즈전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접었다. 6월 중순, 이강철 감독과 프런트에 이와 같은 뜻을 전했고, 지난달부터 KT 위즈의 심리 상담 트레이너로 새 출발했다.
2003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그는 선발 투수, 셋업맨, 마무리 투수까지 모두 맡은 전천후 투수였다. 통산 575경기에 출전, 62승 57패 16세이브 62홀드를 기록했다.
한화 유니폼을 가장 오래 입었고, 2010년 트레이드로 잠시 KIA 타이거즈에서도 뛰었다. 2020시즌 뒤 한화에서 방출됐지만, 이강철 감독의 부름으로 KT에 합류했다. 지난 시즌 KT 불펜진이 흔들렸을 때는 필승조 역할까지 해내며 정규시즌 우승에 기여했다.
안영명을 겪은 지도자, 동료, 구단 관계자는 모두 그의 인품을 칭찬한다. 마운드에서는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였지만,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고, 인간적으로는 따뜻했다. 걸어온 20년은 돌아보고, 걸어갈 20년 각오를 전한 안영명은 "나는 은퇴식을 즐기려고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 은퇴식 당일이다. 심경은. "사실 유니폼을 벗은 지 좀 지나서 평소와 다르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은퇴식에서) 영상이 나오면 또 모르겠다. 서운한 마음보다는 기쁨이 더 크다. 은퇴식을 즐기려고 하고 있다. "
- 가족한테 들은 말이 있다면. "아내도 내가 떨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은퇴사를 잘하라'라는 말을 들었다. 아내 앞에서 한 번 연습도 했다. 아내는 이날(5일) 사인회에 오시는 분들에게 진핑크장미 한 송이씩 나눠드리는 이벤트도 먼저 제안했다."
- 자녀 하일, 하겸 군이 시구를 맡았다. "첫째가 야구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취미반이어서 아직 잘 던지지 못한다. 내는 투구에 미련이 없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주고 싶었다."
- 1군·퓨처스 선수단 대상 심리 상담 트레이너로 새 출발 한다. 배경을 전한다면. "수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했고, 야구 외적으로도 시야를 넓혔다. 물론 야구 열정이 떨어진 건 아니지만, 다른 경험도 필요할 것 같았다. 팀 선배나 지도자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가진 선수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 일찍이 관심이 많은 분야라고 들었다.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하고 전공했다. 내가 상담가로 진로를 정했더니 담당 교수님 등 많은 분이 지지해주셨다. 물론 나는 학자들에 비해 부족하다. 그러나 20년 넘게 산경험을 통해 체득한 배움을 나누고 싶다.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탈수하기 전에 여러 가지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운동선수 출신이 심리학자를 향해 가는 길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런 분야의 첫 주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지속해서 준비할 것이다."
-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자세가 있다면. "사실 2군에서 몇 년씩 머무는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쉽지 않다. 사실 프로 무대에서 뛰고 싶어하는 선수가 정말 많다. 그런 이들에게 '큰 목표와 포부를 갖고 도전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있다면. "두 분이다. 먼저 김인식 감독님. 무명이었던 나에게 4선발을 맡겨주셨고, 1군 선수로 키워주셨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직접 불려 격려해주셨다. 정말 따뜻한 분이셨다. 이강철 감독님도 정말 감사드린다. KIA 타이거즈 소속이었던 2010년 인연이 닿았다. 감독이라는 자리에 오르면 변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 감독님은 정말 12년 전과 달라진 게 없으시다. 한화에서 방출됐을 때 나를 불러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갚아나가길 것이다."
- 배터리 호흡을 맞춘 포수 중에는. "친구 허도환이다. 물론 더 오래, 많이 배터리를 맞춘 포수도 있다. 그러나 동갑이어서 그런지 더 긴밀한 소통을 했다. 함께 경기한 뒤에는 항상 내 방에 찾아와서 투구에 대해 리뷰했다. 성격적으로도 잘 맞았다. 물론 지금도 연락을 많이 하지만,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포수가 될 것 같다."
- 유니폼을 입었던 팀(KIA·한화·KT)들의 의미는. "한화 팬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항상 격려받았다. 질타조차 받은 기억이 없다. 연투가 이어지면 관중석에서 '들어가라'며 아껴주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KIA도 짧지만, 의미가 큰 팀이다. 일단 이강철 감독님을 만난 팀이지 않나. KT 팬도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지 못했지만, 항상 응원해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무대뽀 정신으로 타자를 상대한 투수. 저돌적으로 승부했던 투수.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조금 차갑게 보였을 수 있지만, 벗었을 때는 따뜻했던,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3형제 모두 야구를 했다. 부모님께서 정말 힘드셨다. 이제는 효도하고 싶다. 나도 자녀가 3명이다. 이제는 보통의 부부 생활, 정상적인 가장으로 아내를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