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서연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주체적이다. 남성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영화 ‘독전’에서 드라마 ‘원 더 우먼’을 거쳐 영화 ‘리미트’까지. 진서연은 매 작품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리며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진서연은 지난 25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는 31일 개봉을 앞둔 ‘리미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캐스팅 과정부터 연기에 대한 소신까지 솔직하게 전하며 인터뷰를 이끌었다.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여자 누아르가 없지 않았나. 관객들이 작품의 퀄리티를 떠나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나 같으면 아기 엄마라 궁금할 것 같다.”
-‘리미트’ 출연 과정은. “연주가 단순히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착한 역할이 아니라 악행을 저지르는 복선이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하게 됐다. 또 원작이 유명한 소설이고, 대본도 너무 훌륭했다. 오래 고민했다. 여자 셋이 이끄는 한국 누아르 액션이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이정현과 문정희 캐스팅을 듣고 대본에 힘을 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지게 돼 출연을 결정했다.”
-‘리미트’가 ‘엄마판 테이큰’이라고 불린다. “한국에 여자들이 주도적으로 극을 이끄는 누아르 영화가 없지 않았나. 황정민, 설경구 등 남자 배우가 주류를 이룬 영화들밖에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세련된 액션은 없지만, 아이를 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인다는 점에서 ‘리미트’를 ‘한국 엄마판 테이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충무로에서 여성 서사물이 귀하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남자를 받쳐주는 역할이 아닌 여성이 주체적으로 극을 이끄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독전’도, ‘원 더 우먼’도 그렇고 이번에 ‘리미트’도 직접 아이를 찾으려 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라서 하고 싶었다.”
-작품이나 캐릭터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어릴 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딸 셋 집안에서 둘째로 태어났고 굉장히 많은 가족, 친척들 사이에서 자랐는데, 남자들과 겸상을 안 하는 집안이었다. 그래서 남자에 대한 억눌림과 불평등에 대한 반항심이 있었다. 공평해야 한다는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성들도 동등하게 사회에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고 여성도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감정 표현을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연주가 어떤 감정일까 상상해봤을 때, 말이 안 되는 고통이겠더라. 그래서 촬영 2~3일 전부터는 아이와 떨어져 있었다. 아이가 없어졌다는 에너지를 받아야 할 거 같아서다. 아이와 함께 있다가 갑자기 유괴당한 엄마 연기는 못 하겠더라. 음식도 안 먹고 혼자 칩거하다가 연주가 돼서 촬영에 들어갔다.”
-새롭게 연기적으로 시도해본 부분이 있다면. “연기할 때 설정을 하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캐릭터에 맞게 연기하다 보니 나도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 모른다. ‘리미트’도 내가 슛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재미있었다.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하면서 촬영하는 게 재밌다.”
-현장에서 본 이정현과 문정희는 어떤 사람인가. “문정희는 캐릭터를 상상 이상으로 만들어왔다. 눈의 깜빡임도 소름끼쳤다. 목소리에 전혀 힘을 주지 않고 나른하게 말하는데 너무 훌륭했다. 연기하면서 얼굴을 보는데 소름이 끼쳐서 눈물이 나더라. 이정현은 쉬는 시간에 배우들과 장난을 치다가 카메라가 켜지면 확 돌변한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나는 느려서 확 바뀌는 게 잘 안 되는데 거기에 대한 괴리감이 있었다.” -결혼 후 아이를 미디어에 노출하지 않았는데 미혼 이미지를 추구하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아이가 없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고 싶다. 물론 아이 엄마 역할을 출산 전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건 맞지만, 아이 엄마가 아닌 역할도 하고 싶다. 역할이 굳어지는 건 싫다. 다 열어두고 싶다. 그래서 치정 멜로도 하고 싶다. 밑바닥까지 가는 처절한 멜로 말이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는 국가대표, 태릉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이름을 걸고 나가서 수많은 사람에게 선보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액션 연기를 앞두고 몇 달간 연습해서 작품에 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일상에서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몰입이 안 된다. 책과 영화를 많이 보고, 운동을 하며 24시간 배우로 몰입해 있는 게 좋다. 그렇게까지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많은 스태프를) 책임질 수 없다는 부담감이 있다. 대충하면 안 된다.”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나.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산재해있다. 자기 관리를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