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희는 두산의 최고 '믿을맨'이다. 김태형 두산 감독이 올 시즌 내내 꾸준하게 믿은 구원 투수는 오직 그뿐이었다. 지난해 셋업맨으로 6승 6패 3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2.78을 기록한 기량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음에 비해 올해 성적은 다소 떨어졌다. 2승 9패 18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3.48로 대부분의 지표에서 지난해만 못했다. 시즌 중 부상으로 이탈한 김강률을 대신해 마무리로 옮겨 세이브 개수는 늘었다. 그러나 평균자책점도 올랐고, 그 이상으로 흔들렸다. 블론 세이브가 4개에 패가 무려 9개(구원 투수 1위)에 달했다.
홍건희는 “올해 큰 부상 없이 풀타임 시즌 치러 만족한다"면서도 "패전이 많은데, 그중 동점에 나가서 당한 게 6개인가 된다"고 했다. 실제로 홍건희는 마무리 투수인데도 올해 동점 상황에서 등판이 잦았다. 동점에서 만난 타자들이 55명에 달했다. 김태형 감독이 "6점 차 리드 상황인데도 낼 투수가 홍건희·정철원·김명신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불안한 불펜 상황 때문이다.
성적 역시 좋지 못했다. 홍건희는 동점 상황에서 피안타율 0.366 피출루율 0.471 피장타율 0.610으로 크게 부진했다. 일반적인 필승조 등판 상황인 3점 차 이내로 조건을 넓히면 피안타율 0.329 피출루율 0.308 피장타율 0.332로 상대 성적이 훨씬 좋았다. 동점 등판 상황이 올 시즌 그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셈이다.
충분히 이유를 댈 수 있었지만, 홍건희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이겨내지 못한 게 제일 아쉽다. 내년엔 동점에서도 잘 이겨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올해 투수 조장을 맡았던 홍건희는 벌써 두산에 온 지 3년 차 선수다. 이제 두산 유니폼이 어색했던 이적생의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는다. 최다패 구원 투수지만 홍건희에 대한 팬들의 믿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최근에는 팬들이 모금해 홍건희와 김명신 앞으로 커피차도 선물했다. 이벤트를 준비한 팬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으면서도 숨은 일꾼으로서 두산베어스 마운드를 지켜준 두 선수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홍건희가 지난 3년 동안 던진 이닝은 정규시즌만 해도 205이닝에 달한다. 2년 동안 긴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포스트시즌에서도 13과 3분의 2이닝이나 던졌다. 홍건희는 “두산 와서 3년 동안 많이 던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행복하게 야구했다고 생각한다. (부진했던 KIA 타이거즈 시절에는) 더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질 때가 많았다. 난 행복한데 두산 팬들은 고생한다고 선물도 챙겨주신다. 너무 감사드리고 이런 선물에 또 힘이 더 난다”고 했다.
김태형 감독이 홍건희를 믿듯, 홍건희도 자신을 믿는다. 그는 '내년에 더 잘하겠다'는 말 대신 다치지 않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큰 부상은 없었어도 등(담 증상)과 왼쪽 햄스트링이 좋지 않아 몇 차례 휴식을 치렀다. 홍건희는 “이제 기술적으로 크게 변화를 줄 것은 없다"며 "다만 잔 부상이 조금씩 나오더라. 올겨울에는 잘 관리하고 치료와 트레이닝을 진행해 건강한 몸으로 내년 시즌 초부터 뛰겠다”고 다짐했다.